백합/사는 이야기

배춧국

수성구 2013. 12. 16. 14:20

 



"오늘은 무얼 해 먹지?"
어릴 때 어머니는 저녁밥 지을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밥 먹는 시간이 어머니에겐
매끼니마다 걱정거리였을 겁니다

'오늘은 무얼 해 먹지?"
밖에 나왔다 산방으로 들어가면서 나도 그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아, 배춧국! 배춧국 먹다 남은 게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마음이 흐뭇해지고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국사발을
만질 때처럼 따스한 기운이 몸에 퍼집니다



쌀 한 주먹 물에 씻어 저녁밥을 지으면 오늘 식사준비는 끝입니다
배춧국을 데워 밥 한 그릇과 함께 마련한 저녁상에는
제자가 만들어다준 무말랭이도 있고,
집배원의 누나가 가져다준 동치미도 있고,
후배들이 한 통 담아온 총각김치도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식탁 위에 동원된 손길이 참 많습니다
고맙고 고마운 세상입니다



배추 한 포기는 천오백 원에서 이천원 정도 합니다
값이 더 쌀 때도 있습니다
반 포기면 큰 냄비 가득 국을 끓입니다
나 혼자 먹기 때문에 사나흘은 먹습니다
호박고지를 함께 넣어 끓이기도 하지만
한 사발의 배춧국은 값으로 따지면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멸치국물과 된장에 우러낸 배춧국은 맛이 담백합니다
담백한 맛은 물리지 않는 맛입니다



사람도 담백한 사람은 편안합니다 같이 지내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한 번 사귀면 오래 갑니다

담백한 맛은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오래 먹어도 싫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특별한 맛은 당장에는 좋지만 오래가지 못하고금방 다른 것을 찾게 되는데 된장을 맑게 끓여 우려낸 맛은

 우리를 그 맛에 길들입니다 창밖에는 풀풀 눈발이 날리는데나는 배춧국 한 그릇에

이 저녁이 행복합니다다른 이들은 어디서 무얼 먹으며 행복을 찾고 있을까요. - 안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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