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작지만 너무 소중한

수성구 2015. 7. 10. 06:24

작지만 너무 소중한


작지만 너무 소중한….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하루는 2교시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습니다.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아파서 선생님께 조퇴를 청했습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학교 앞 버스 정거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 있기도 
    힘들어서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제게 다가와서 아는 척하였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옆집 아주머니였습니다. 
    당시 저의 집은 수원 송죽동이었고 학교는 매교동이었습니다. 
    제법 먼 거리인데도 오전 시간에 
    학교 앞 버스 정거장에서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응급상황에 말입니다. 
    저는 아주머니에게 지금 배가 너무 아파서 조퇴하는 길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아주머니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바로 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주셨습니다.
    내과 의원에서 진찰한 결과 급성 맹장염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우선 응급조치로 백혈구 수치를 낮추는 주사를 놓아 주시고는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며 가까운 외과 병원을 알려주시고 소견서를 써주셨습니다. 
    저는 옆집 아주머니 덕분에 우선 응급치료를 마치고 일단 집으로 왔습니다. 
    당시 부모님이 모두 직장 생활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지내던 사촌 누이가 야근을 하고 돌아와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짜고짜 사촌 누이를 깨워서 무조건 병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보호자 없이는 수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밤새 야근을 하고 돌아와서 
    피곤함에 지친 사촌 누이는 제 이야기를 듣고는 선뜻 함께 나서 주었습니다. 
    내과 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병원에 가보니 이미 외과 의사 선생님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간단한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바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엄마가 왔습니다.
    즉시 조퇴를 허락해준 선생님, 
    저를 알아보고 병원에 데려가준 옆집 아주머니, 
    친절하게 소견서를 써주신 의사 선생님, 
    피곤해도 함께 해준 사촌 누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만일 이들 중에 누구 하나라도 제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나 귀찮게 여겼다면 
    필시 저는 큰 낭패를 보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배에 있는 맹장수술 자국을 
    보면서 작은 관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이지만 
    하느님께서 관심을 보이자 그것은 커다란 나무가 되었습니다. 
    어렵고 아픈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보이는 작은 관심은 
    비록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너무 소중한 하느님 나라의 열매입니다.
    수원교구
    이근덕 (헨리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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