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고난의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것이다.
(요한 13.31-33)
영광은 고난의 자리에서
(마진우 신부. 대구대교구 초전성당 주임)
영광이라고 하면 우리는 좋은 집. 좋은 차. 많은 돈을 버는 직업처럼
당연히 세상의 성공을 떠올린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8년 간의 선교를 마치고 볼리비아에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얼마나 고생했는가...하는 것이었다.
말이 달라서 얼마너 힘들었으며 음식이 달라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즉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어떤 괴로운 체험을 사람들은 듣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들으면서 지금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
얼마나 나은 곳인지 알고 싶어했다.
비교우 위에 서고 싶은 그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영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선교사의 보람이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 말고는 채워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가난한 곳이야말로 하느님의 말씀 선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다른 낙이 따로 없을 때 거꾸로 복음의 기쁨은 빛을 발한다.
나는 마음껏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며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영광이었다.
예수님이 당신의 영광을 말하는 자리는 다름 아닌
유다가 어두운 밤 최후의 만찬 자리를 떠난 그 순간이었다.
예수님의 영광의 자리는 `수난`곁을 같이 한다.
다가오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지금 수고로이 공부하는 학생의 부푼 꿈이 영광이다.
훗날 가족의 단합을 꿈꾸며 지금 성실히 가족을 위해 궂은 일을 견뎌내는
아빠의 땀방울이 곧 영광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쾌락의 영역에서 영광을 찾기에 바쁘다.
사랑하는 건 수고로운 일이다.
그저 두 사람이 서로의 매력에 끌려서 좋아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사랑이라고 하기 힘들다.
그건 기호에 끌린 것 뿐이다.
술주정꾼이 술을 갈구하고 댐배를 못 끊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순간적인 쾌락을 갈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전정한 사랑은 서로의 수고를 견뎌내고 이겨내어
비로소 얻게 되는 평화로움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한 영광을 시작하기 위해서
극심한 고난을 동시에 시작해야 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영광은 기쁨의 자리보다 고난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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