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비싸게 산 건데
11월 넷째주 대림 제1주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25)
이거 비싸게 산 건데
(최재관 신부. 육군 53사단 하상바오로 성당 주임)
올해 7월 본당을 옮기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비우고 버리는 것이었다.
신학생. 보좌신부 시절엔 승용차 한 대에 모든 짐이 들어갔었다.
그런데 화물차가 있어야만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짐이 불어나 있었다.
결국 짐을 거실에 모아 놓고 앞으로 계속 쓸 것과 버려야 할것을 차근차근 분류했다.
분류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지만 버릴 것들을 막상 버리려고 하니
망설여져 분류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아. 이거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요건 쓰진 않지만 선물 받은건데...
사제관 한 켠에 털어버리지 못한 미련들은
며칠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정리되었다.
짐을 정리하면서 가장 버리기 힘들었던 것은
물건이 아닌 마음속 집착과 망설임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우리 사는 모습을 보면 정반대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건강에 대한 집착. 과도한 다이어트. 쌓아놓은 옷들.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읽지도 않으면서 갖고 있는 책.
냉장고 속 상한 음식....
흘려보내지 못한 우리의 마음이 집안 곳곳에 곰팡이 처럼 박혀있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젊음은 영원하지 못하고 우리는 삶의 끝자락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하지만 끝없는 욕심과 집착은 이 당연한 진리를 망각하게 만든다.
삶의 유한함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는데도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중요한 것을 탐구하는 데 써야 할 시간들이
허무하게 낭비되어 버린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진실로 나의 것인지 곰곰 생각해보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은 막상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돈으로 산 물건들은 엄밀히 말해 잠시 빌리는 것들이며.
죽음 이후에는 누군가에게 가거나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누군가와 맺는 관계들도 온전히 나의 의지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삶마저도 주님께 선물로 받은 것이기에
온전히 내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마지막 때에 예수님 앞에서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것은
나의 마음과 의지뿐이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할 것도 있지만
때론 흘려보내야 할 것도 있다.
이 분별은 많은 묵상과 시간을 필요로 하면.
혼자서만은 극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참스승이요 어버이신 그리스도께 도움을 청하자.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우리를 돕기 위한 주님의 배려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를 기도드리자!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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