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삶이 내세의 삶과 직결된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언젠가 없어질
이 땅의 정의를 구현하고 애덕을
실천하는 이유,
즉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바로 이 땅의 삶이 내세의 삶과
직결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죽고 난 뒤의
내세를 제외하고 이 땅의 삶과
현세만이 전부라고 가르치며 오로지
이 땅에만 마음을 빼앗기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어도
천상과 영원한 세상의 복락과 멸망,
죽음 이후의 심판과
천국, 연옥, 지옥을 가르쳐야지
이 땅에만 시선을 두게 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4장 23~24절에서
하느님은 영이시고
영이신 하느님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영혼의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진리)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살아야 하며,
영혼의 핵인 심령(세례와 견진때 받은
성령을 담는 그릇)의 양식인 성령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사랑인 은총)을
받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성사 생활을 하는 것이
영이신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영적인 차원과 초자연을 배제하고
죽음 이후의 내세를 부정하면서
자신이 하느님이 되고 영적인
혁명당원(Zellotai,Zelotes)이 되어
지상의 유토피아와 낙원을 인간 스스로
건설한다는 착각과 망상에서
교회가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전인적인 구원을 말하지만,
죽고난 뒤에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누리며
하느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본질적인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현세에서의 믿음 생활이
도무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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