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때밀어 주는 곳
어느 지방의 본당에 있을 때 일이다.
구역 가정 방문을 하고, 끝에 구역장 집이나
반장 집에서 미사를 해야 하는데,
자꾸 구역장이 이번 미사는
목욕탕에서 해야 한다고 애걸복걸 하였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고 물으니,
서울에 사는 어떤 교우가
목욕탕의 주인이고,
내가 있던 본당의 교우가 관리인인데,
지하수도 모자라고, 자꾸 나환우들이
목욕탕에 오기 때문에 영업이 안되어,
목욕탕을 팔기로 내놓았는데,
잘 안 팔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부님이
목욕탕에서 미사를 한 대 딱 드려 주면,
좋은 일이 있을거라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신부인 나를
박수 무당 정도로 아는가 싶어,
교우들의 기복적인 자세에 언잖았지만,
하도 부탁을 하길래 미사를
드려 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웃기는 일이 발생했다.
교우들이 탈의실에 제단을 차려 놓고
옹기 종기 앉아 있는데,
신부가 구역까지 나와서 미사를 드리니,
냉담하던 교우들도
나와서 미사에 참례하려 했다.
아마 미사도 드리고, 미사끝에
친교도 있으니, 미사에 나온 것 같았다.
그러니 미사중에 성체를 모셔야 하니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다.
고해성사를 주려니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급기야 물색한 장소가
목욕탕이었다.
영업을 그만둔지 오래된 탕 안은
참으로 썰렁했다.
탕 안에서도 본탕을 보니, 계단이 때를 밀고
본탕 안에 들어가도록 만들어져서,
거기에서 성사를 줄까 하다가,
신부 스타일이 다 뭉게지는 것 같아,
탕 안에서 다시 두리번거리며
장소를 물색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좋은 자리인가?
한 쪽 벽을 쳐다 보니,
'여기는 때 밀어 주는 곳'이라고
글이 붙어 있었다.
'바로 여기다'
'육신의 때만 때냐 영혼의 때도 때지'
하면서, 의자를 가져오라 해서
꽤 오랜 시간동안 고해성사를 주었다.
성사를 다 주고 탕 밖으로 나오니,
교우들도 나도 크게 웃었다.
'여보세요 조선천지에 목욕탕 안에서
성사주고, 탈의실에서 미사드린 신부가
어디 있겠어요?'
그 목욕탕이 미사의 은혜로 팔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는 때밀어 주는 곳'에서
고해성사를 주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우습다.
성사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 표지라 배웠는데…
얼마나 성사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