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한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무슨 상관이 있겠나이까?
이 글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알아 보았더니,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sakis; 1883~1957)의
영혼의 자서전인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책은 읽지 않았지만,
이 땅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가
간 분이 소설 속의 조르바이고,
그게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화상인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최후의 유혹'이란 글을 읽고
독후감을 심리학 시간에 제출한 것
같은 기억이 난다.
나는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를
영적으로 순수하게 묵상하면서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다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정화, 조명, 일치의 단계를 따라
첫째, 둘째, 셋째의 기도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기도를 보면서 영적으로만
생각했다.
첫째 기도는,
활의 주인이신 주님께 내 자신이
영적으로 교만하지도 게으르지도 않게
적당한 시련과 고통의 채찍을
가해달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둘째 기도는,
제가 약해서 자칫 잘못하면
생의 여정에서 실망하거나 절망, 포기하여
도망갈 수도 있으니
시련과 고통의 완급을 조절해 달라는
기도로 들렸다.
셋째 기도는,
하느님의 절대적 은총이 나를 도우면
아무 문제가 없으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라는
의탁의 기도로 들렸다.
이 세가지 기도의 상황은 그때 그때
각자의 상황과
실존적인 처지와 영혼 상태에 따라
다르게 올 수도 있고,
복합적으로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이 글을 읽으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세속에 몸답고 있지만
세속에서 분리된 자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다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는 것이
진실한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7장 15절 이하의
말씀에 의하면 본성대로 살면
100% 죄를 짓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의 절대적인 생명의 말씀 앞에
선악의 실천적 분별력인 양심이 있고,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도덕적 책임과 심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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