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2연타 헛스윙 미사

수성구 2021. 5. 21. 05:53

2연타 헛스윙 미사

5월 넷째주 성령 강림 대축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20.19-23)

 

2연타 헛스윙 미사

(최재관 신부. 육군 전진1사단 성당 주임)

 

가정의 달 5월은 소풍 가기 딱 좋다.

한낮의 햇살은 따뜻하고. 밤이 되어도 적당히 서늘하고 군대에서도 5월은 훈련하기에 딱 알맞은 시기이다.

재작년 이맘때쯤 나는 군종장교가 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훈련을 소화 중이었다.

병사가 아닌 장교로서 재입대였지만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함께 입대한 목사님과 스님들은 처음 경험하는 군 생활이라 많은것을 물어보셨다.

동기로 입대했지만 선임 같은 마음으로 대하며 군인이자 성직자로 살아가는 진지한 이야기도 나누고.

새로운 군 생활에 적응해갔다.

7월. 드디어 군종신부가 되어 부대에 임관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걱정스러운 고민이 가득 찼다.

업무 매뉴얼과 사목 지침이 있었지만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내 마음은 자꾸 두려움으로 기울었다.

그래. 일단 부딪혀보자..라는 이등병 같은 마음으로 첫 주일날 작은 공소에서 병사들과 함께 미사를 하게 되었다.

 

 

창고 같은 좁은 공간. 에어컨까지 고장 나 습기와 곰팡내가 스며든 곳으로 기도하고자 모인 용사들의 기대에 찬 눈을 보며

이들에게 무엇을 전해주어야 할까. 고민스러운 마음을 품고 미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제의는 긴장으로 푹 젖었고. 머리는 새하얘졌다.

거기다 더듬더듬 말투까지 2연타 헛스윙을 날리며 어설픈 첫 미사가 끝나버렸다.

용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부족한 내 모습에 실망한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 흑역사 같았던 첫미사는 나에게 부끄러움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어서 오세요. 신부님!

반가워요 신부님!
그들이 건네는 환영의 말에 오히려 내가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들의 미소를 보며 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어야만 한다는 강방스러운 고민은 녹아내리고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음을 체험한 것이다.

 

 

예수의 죽음 이후 불안에 떨던 제자들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목적을 상실한 그들 앞에 나타난 부활한 예수는 평화의 말씀을 건네며 그들과 함께하셨다.

수많은 의문과 의혹이 쌓여있었겠지만. 단지 예수께서 함께하는 것만으로 제자들의 아픔은 치유되었고.

답을 내릴 수 없었던 마음의 실타래가 풀렸다.

 

 

지금도 누군가는 마음속에 많은 고민의 실타래가 얽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고민은 뒤로 하고 우선 함께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성령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용기를 내어보자.

그 용기를 보시고 주님께서 손수 얽힌 실타래를 풀어주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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