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내음

5월을 맞아 편지를 보냈다가...

수성구 2021. 5. 7. 05:01

5월을 맞아 편지를 보냈다가...

 

 

+모든 마음의 중심이요 임금이신 예수 성심!

 

제가 좋아하는 절친이 있는데 저랑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10년지기이니 어진간한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사이라고 여기지요. 그런데 공감하지 못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어서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지 생각해 오던 참인데, 5월을 맞고

보니 성모님을 향한 사랑에 가슴이 벅차 오르기에 차분히 메일을 써서 보냈지요.

 

친구는 레지오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이웃 사랑 실천은 감히 나따위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폭넓게 살아왔지만, 단원들끼리 뭉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는지 아예

입단을 하지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묵주 기도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자신에게 묵주기도는 어울리지 않는 기도 방식인 것 같다고, 자신은 혼자서 묵상하며

기도하는 관상 기도가 잘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묵주기도가 관상

기도가 아니라니.... 묵주기도를 20단씩 바치게 되면 예수님과 성모님의 일생을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관상 기도가 아니라니요. 내심 참으로 안타까웠어요.

 

수도자들이나 제가 악기를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은 취미 생활을 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식으로 못마땅해 했어요. 그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취미 생활 자체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거지요.

 

악기든 다른 기능을 익히는 일이던 간에 취미 생활이라 하여 만만한 건 아니더라고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접어 버릴 수 있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꾸준한 노력과 수고를 감당하지 않으면 지속해 가기 어렵습니다. 취미 생활이라기 보다는

'공부'라고 생각되더군요.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저에게, 제가 속한 단체에서 당연히 제가 반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피아노는 단시일에 기능이 익혀지는 악기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

배운 것도 아니고 나이 들어서, 바쁜 일과 중에 가까스로 짬을 내어 배우는 중이라

진척이 빠르지 못한데 공개석상에서 절 지목하자 정말 난처했어요.

 

그에게 걷기 운동을 해 보라고도 권했지요. 묵주 기도를 드리며 걸어 보자고...

영육간의 건강에 큰 도움이 있더라며... 그는 허리가 많이 아프답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도 허리 아픈 이들이 꽤 있는데, 수영보다도 걷기 운동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가

있더라는 분이 계셔서 그 이야길 전했더니, 자신의 몸은 자신이 더 잘 안다며 일축해

버렸습니다.

 

해외 성지 순례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강한 이였어요. 고혈압이 있어서 비행기를 타기

어렵다합니다. 그리고 전자파에 민감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컴퓨터로

070 전화만 사용하기 때문에 전화로 소통하기가 어렵지요.

 

이런저런 일들로 괴리감이 적지 않아 진솔하게 소통해 볼까 싶어 메일을 보냈다가

차가운 답신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쉽게 자신을 열어 보이기 싫다고... 일단 실망이

되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았네요. 60이 넘어가는데, 이제껏 살아온 삶의 패턴이나

사고방식을 바꾼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섣부른 소릴 꺼낸 제가 실례를 했는지도 모르지요. 받아들이냐 마느냐는 그의 선택

사항이니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 안에서 자기 나름의

가치관일 터이니 제3자가 왈가왈부 하는 게 무례일 수도 있겠지요.

 

저 역시 누군가가 자신의 관점에서 타인들이 이래 저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싫어합니다.

자신의 생각만 펼쳐 보이면 되는 것이지 남들에게도 자기 식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요. 다만, 내 생각을 권면할 수는 있는 거고, 수용 여부는 상대방의

몫이니 후속 조치에는 미련을 두지 않지요. 그렇지만 냉랭한 반응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굳이 편지를 보내진 않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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