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여정
기도의 여정
기도의 여정은 인간 삶의 여정만큼 깁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압니다.
즐거운 풀밭 사이 오솔길로 가기도 하고
평화로운 시골길로 가기도 하며
구불 오르는 좁은 산길을 가는가 하면
거친 바윗도들이 널려 있는 산등성이길로
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소음으로 가득 차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도시의 길을 가기도 하고, 때로는 강이나 바다로
이어지는 지하관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가며
온갖 삶의 부스러기와 쓰레기를 실어 나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항상 기도입니다.
나는 침묵이 없을 때도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
말라 버린 하천의 자갈들 밖에는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물을 달라고 할지는 몰라도 갈증이 나서 굽어져 버린
한 그루 풀포기의 모습 자체가 하늘이 보기에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입을 다물고 생활로 말하는 인간의 비참한 삶의
상태가 기도가 아니란 말입니까?
사랑이신 하느님의 입장에서 마땅히 개입하시어
비참한 처지에 있는 다인의 피조물, 즉 인간을
도와 주러 오실 구실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은 죄를 짖기 이전에는 너무 서둘러 자신의
목적지, 즉 하느님 자신에 이르려 한 잘못을
저질렀고 죄를 저지른 이후에는 다른 잘못,
즉 그토록 위대한 목적지인 하느님을 더 이상
믿을 줄 모르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아무런 제한 없이 들어 주십니다.
그 기도가 말로 이루어질 때는 들어 주시고,
생각과 묵상일 때는 도와 주시고, 생활이 될 때는
일으켜 주시고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인간의 목적지는 인간 생활의 한계를 넘어 이
세상을 훨씬 뛰어 넘어 갑니다.
진정, 우리의 목적이 하느님께 이르는 것이고,
지상의 모든 상징을 뛰어넘어 직접적으로
그분의 순수한 참 실체를 응시하는 것이라면
하느님과 하느님의 본성의 드높으심에 이르는 기도,
측 초자연적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초자연적 기도가 주부적 관상입니다.
◀◀◀ 보이지 않는 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