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희망을 닦고 있답니다!

수성구 2020. 11. 10. 04:18

희망을 닦고 있답니다!

(엠마오로 가는길 송현신부)

 

1822년 런던의 한 길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구두를 닦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소년은 구두를 닦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두를 닦는 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떠날 줄 몰랐습니다.

더구나 구두를 닦는 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떠날 줄 몰랐습니다.

더구나 노래를 불러도 언제나 즐거운 가락만 흥얼거리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하도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얘야. 넌 구두 닦는 일이 그렇게 좋아?

그때마다 손년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즐겁지요. 저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를 저술한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디킨스 입니다.

어린 디킨스는 반짝거리는 구두코 위에서 불행의 그림자 대신에

희망의 별빛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가끔 우리 앞에서 빵 대신에 벽돌을 던져주십니다.

그러면 어떤 이는 그 벽돌을 원망하며 걷어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집니다.

반면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집을 짓는 이도 있습니다.

고난의 벽돌은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고난이 불행의 원인이 되는 가 하면 행복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알다시피 유대인의 역사는 고난으로 얼룩진 역사요 눈물로 쓰인 세월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Say yes to Life. in sprite of everything 이말처럼

유대인은 고통의 폭풍이 밀려오고 환난의 바람이 불고 절망의 늪에 빠졌어도.

삶에 대해 어떤 경우라도 예스..라고 대답하며

긴 터널을 통과 해왔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각자의 십자가 앞에서 `예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자신의 십자가에 대해 불평하거나 이를 회피하지 말고 기꺼이 짊어져야합니다.

먹구름이 아무리 짙어도 그 뒤에는 빛나는 태양이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장차 누리게 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닮은 일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부활의 영광된 모습만 닮지 말고 십자가를 지신 모습도 닮아야 합니다.

고난의 언덕에 올라서야만 영광의 빛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죽음 없이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변모시키는 정화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채찍이요 부활의 전주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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