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흙 범벅 프랑스 청년들

수성구 2020. 11. 11. 05:15

흙 범벅 프랑스 청년들

11월 셋째주 연중 제33주일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마태 25.14-30)

 

 

흙 범벅 프랑스 청년들

(최재도 신부. 마다가스카르 선교)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이름은 만드리짜라(Mandritsara)직역하면

잘 자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매년 네 명의 프랑스 청년들이 파리외방 전교회를 통해서

양성을 받고 정식 파견식을 거친 후 1년간 봉사하러 온다.

이 지역에 파리외방 신부는 나밖에 없기에 나의 몫은 이들이

제대로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들에겐 프랑스를 떠나서 먼 마다가스카르까지 오는 여정도 쉽지 않지만

도착해서도 처음 겪는 환경이 낯설어 힘들다.

 

 

한번은 그들을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왔는데 밤늦게 전화가 왔다.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잔뜩 겁먹은 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갔더니 도마뱀이 벽에 붙어 내는 소리였다.

벌애 훍 묻을까. 벌레가 달려들면 기겁을 하던 그들이 몇 달이 지나니

원주민처럼 맨발로 아무렇지 않게 다닌다.

가방 걸쳐 메고 자전거 타고 다니며 중. 고등학교와 교도소에서

프랑스어 수업을 진행한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씩씩해지는 그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부활절과 같은 큰 축제일은 늘 오지 공소에서 지냈기에

이번에도 그곳에서 지낼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청년들이 나와 함께 공소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기여서 길이 진흙투성이라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그들은

꼭 같이 가고 싶다며 조르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허리까지 빠지는 진흙밭을 건너고 숲을 지나다 말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인 청년 둘이 자리에 주저않아 울고...

 

 

부활을 지내고 본당으로 돌아온 우리는 흙 범벅이 된 서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찍은 사진은 아직도 그들과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아이처럼 보였던 그들은 몇 달 새 부쩍 성장해 어른처럼 보인다.

그들의 도움은 선교지에도 도움이 되지만

그들 스스로에게도 참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오늘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 말씀을 듣게 된다.

나는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하여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앇길 것이다..라는 말씀이 봉사자들을 통해서 실현됨을 본다.

 

 

그들 스스로가 어려운 상황.

하느님의 사업에 과감히 자신을 봉헌하며 뛰어들었기에 얻어지는 결실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리라.

자신도 몰랐던 하느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 달란트를 더욱 더 영롱하게 가꾸어 나간 자신들의 모습에

참으로 뿌듯했으리라.

내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러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