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어떻게 갔습니까?
(엠마오로 가는길 송현신부)
이 이야기는 수도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수사가 늘 밥을 두 그릇씩 먹었습니다.
다른 수사들은 이런 그를 절제할 줄 모른다고 험담하며 미워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수도원에 있던 모든 수사들이 죽어서 일부는 연옥에서 단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식탐으로 지오게 간 줄로만 알았던 수사가 천국에 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보다 못한 수사들이 하느님께 따졌습니다.
주님. 저 수사는 절제할 줄 모르고 식사때마다 밥을 두 그릇씩이나 먹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천국에 바로 갈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수사는 원래 밥을 네 그릇 정도 먹는 것이 정량인데
평생 두 그릇만 먹었느니라. 그러니 그 정도면 참으로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영국 속담에 사람들은 모두 기억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하지만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하는 일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명확한 통찰입니다.
자신의 기억력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우리가 아닙니까.
신앙인이 내릴 판단에는 두 가지 잣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잣대요.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잣대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언제나 이 두 잣대 사이에서 번민하며 갈등합니다.
이천 년 전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잣대로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나
얼마 후 그분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잣대로 다시 재어보니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현실적인 이득을 전혀 줄 수 없는 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신앙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속적 가치로 이웃을 배척하고 세속적 판단으로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하느님마저 탐욕으로 재단하며 매번 십자가에 그분을 매답니다.
그런데 과연 내 잣대에 딱 들어 맞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자동판매기 같은 하느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앙인의 잣대는 자신의 판단력이나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눈이 되어드리고. 내가 하느님의 귀가 되어드리고
내가 하느님의 손발이 되어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안에도 있을 그 옛날 유대인들의 간사하고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극복해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온갖 상황에서 늘 이렇게
자문해야 할 것입니다.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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