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기름
11월 둘째주 연중 제32주일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 25.1-13)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기름
(김주현 신부. 부산교구 문현성당 주임)
신학생 시절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은 다양했다.
일상 성실형은 강의 시간에 충실하고 노트를 정리해놓아 오히려
시험 기간에는 부담이 없었다.
벼락치기형은 시험 때만 되면 강의 내용을 요약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으며 바쁘게 공부했다.
시험 전까지 놀다가 동료들의 요약본을 복사해 시험 전날 열심히 보고
시험에 응하는 요약본 수집형도 있다.
가끔 요약본 수집형이나 벼락치기형이 좋은 점수를 받을 때도 있지만.
역시 일상 성실형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시의 결혼잔치는 더운 낮을 피해 밤에 시작되었다.
하늘나라의 혼인 잔치에 들어 가기 위해서 밤늦게 도착하는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은 우리다.
신랑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분의 기름을 미리 준비한 처녀는
하늘나라를 상징하는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세례를 받으며
자신을 태워 세상의 어둠을 비출 영적인 등잔을 받았다.
그런데 등잔이 빛을 내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한데.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기름은 무엇일까?
기름은 짜내는 고통을 거친 한 두 방울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늘나라를 위해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사랑과 자비가 그 원료이며.
세속의 유혹을 이겨내고 희생과 고통을 통해 짜낸 결실이
바로 영적 기름이다.
한 주를 알차게 보내고 또 주일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
헌금과 교무금을 준비하는 정성스러운 손길.
고해소로 향하여 자신을 뉘위치는 그 마음.
그리고 사제로서 그런 교우들의 간절한 기도를 제대 앞에 모아.
매일 드리는 미사지만 항상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집전하는
나의 이 마음도 신랑인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평소 미리 준비해야 할 기름 한 방울 한 방울인 것이다.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받아들인 고통과 희생과 인내를 통해.
나도 모르게 하늘나라를 위해 준배해야 할 기름이 모여든다.
이렇듯 슬기로운 처녀들이 준비한 기름은
평소 희생과 인내로 방울방울 모은 사랑의 열매다.
늘 미리 공부하고 준비한 일상성실형이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것처럼.
일상에서 성실하게 희생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미리 기름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신앙인이
바로 슬기로운 처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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