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아름다운 침묵

수성구 2020. 10. 6. 06:27

아름다운 침묵

아름다운 침묵

(김준호 신부)

 

 

사제로 살면서 많은 죽음을 본다.

어쩌면 그렇게 죽는 모습. 죽음의 모습이 천양지판인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유독 생각나는 죽음이 있기 마련인데.

이맘때가 되면 마리아할머니의 죽음이 생각나곤 한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마리아 할머니는 군산 해망동 산중턱 판자촌에서

평생 조개껍질 까는 일을 하면서 억척스럽게 사셨다.

사시장철 바닷바람이 거센 바닷가 산중턱의 판잣집.

그 어려운 처지에서도 꼬박꼬박 교무금하며 매주일 적잖은 봉헌금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더러는 용돈 쓰라고 꼬깃꼬깃 몇 천원을 손에 꽉 쥐어주시던

그 정성스러운 손길. 수년이 흘렀거만 지금도 따스하게 생각난다.

할머니의 손은 닭다리같이 거칠고 투박했지만.

그 따스함은 부드럽게 내 마음을 감싸주었다.

 

 

마리아 할머니는 그렇게 지치고 힘들게 사셨지만

너무나 곱게 눈을 감으셨다.

그래서 그분의 죽음은 참 많은 것을 내게 남겨주었다.

마리아 할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스스로 물어본다.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루하루 억척스럽게 살아서 우리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마리아 할머니는 말없이 고요한 침묵 가운데 하느님께로 돌아가셨다.

인간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겠는가?

아니. 인간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그저 조용한 침묵이 아니겠는가?

하느님이 주신 한 생의 명을 다하고.

그 하느님 앞에 다시 선 인간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마리아 할머니 역시 강하고 힘 있게 살아온 그만큼.

그 무엇보다도 강하고 힘 있으신 하느님 앞에

조용히 침묵하며 서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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