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의 바람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사고가 다르고 이상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면서도 각자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조화로운 세상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한 부모의 뱃속에서 태어난 사람도 각자의 성격이 달라서
충돌을 하기도 하는데 수많은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일반적 마음가짐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기적인 사고가 팽배해진 지금의 시대 안에서는 사회나
교회나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개혁의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개혁을 해야 할 주도자들은 자신의 안위와
밥그릇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해야 하고
쇄신해야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정의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개혁을 부르짖던 사람들에 의해서 부적절한 통치자들을
내몰 수 있었고 의인들을 만들어 내었으며 부당한 간섭에서부터
교회를 구하고 교황권울 보호해 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이러한 분들이 없었다면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는 폭력에
의해서 고개조차 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없으며 합주곡을 연주하는
곳에서 혼자서 특정적인 소리를 내게 된다면 그 음악회는
화음의 조화를 잃고 엉망이 되고 말듯이 우리들의 삶도
뜻을 같이 하지 못하면 평화를 잃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공동체도 예외는 아닙니다.
몇몇 사람들의 의견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 의견이 교회의
일치된 모습을 만들 수 없다면 그것은 교회란 이름을 빌려
개인의 의견을 투철 시키려는 행동이 될 뿐입니다.
신앙공동체의 일치는 개인의 능력으로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성 안에 있는 우리들이 하느님 뜻 안에 스며들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일치란 같은 손가락이면서도 손가락의 길이가 다르고 각기의
손가락이 하는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 손가락들이
힘을 합해서 하나의 손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서로 으뜸을 자랑하고 승패를 따지려한다면 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힘과 능력도 분산되고 맙니다.
분쟁은 승자와 패자가 구분하지만 서로 칭송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패자는 없어지고 승자만 남게 되며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