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냐, 하느님이냐?
일하는 책상은 작가실에 두고, 제작부서 정규직 소속이었던 방송국 생활 초기에,
저는 부서 책임자와의 관계가 부드럽지 못한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하루는 긴급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여 밤늦도록 저를 포함한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대책을 세워야 했고, 모임의 결과가 방송 송출(送出)에 직접 반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일상적으로 맡고 있던 정규 프로그램이 문제였고, 물리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은 밤을 지새워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제시간에 정확하게 방송 대본을 책임자 앞에 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놀라는 눈치였고, 그 다음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바라보던 부서장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신뢰를 얻게 된 후로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자연스러워졌고, 제가 프리랜서로 나설 때까지
그분과 일하기에 수월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일상의 어려운 일들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내가 만나는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명절 때 아무리 일이 고달프고 피곤하더라도 만나는 일가친척, 가족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나면 피곤이 쉽게 풀리기 마련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도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을 코앞에 둔 오늘 주일
독서에서 근심에 쌓여있는 백성에게 하느님의 크고 큰사랑이 그들 시온을 향하고
있다는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관리인이며
그리스도의 일꾼인 우리 신앙인들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지니고 그분께
충실한 종, 주인을 잘 섬기는 종이 돼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이냐, 재물이냐?”를 물으신 다음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친절하고도 소상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려면 시간이 날 때 먼저 찾아가는 곳이 어디인지,
돈이 생겼을 때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살펴보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를 보자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서 여러 가지 가치와 대면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디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저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하느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신다고 할 것입니다.
저도 글 한 줄을 쓰더라도 ‘혼이 담긴 작품’을 쓰고 싶고, ‘하느님’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돈이나 명예, 다른 어떤 ‘우상’이 아닌 ‘하느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려고 한다면 그분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는 것이, 그 말씀의 이삭 하나라도 건지고 살아내는 것이 먼저가 아니겠는가를
저 자신에게 물어보고, 다짐하고 싶습니다.
최홍준 파비아노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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