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요강을 닦는 거룩한 겸손, 사랑

수성구 2014. 2. 27. 15:34


요강을 닦는 거룩한 겸손, 사랑
    시절이 하 수상합니다. 겉가죽만 번지리 하거나 말솜씨 좋은 달콤하고 기름쳐진 그럴싸한 거죽때기들만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본말이 전도된, 기초와 본질의 참된 가치는 도외시 당하고 테크닉만 우선되는 시절과 세태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겪고 있지 않나 하는 무거운 마음이 드는 2월입니다. 교문을 나드는 이들이 교차하는 졸, 입학의 특별한 시기인 2월 연중 7주일…. 소위 지혜롭다고 으스대는 세상 속에서 주님을 닮아 어리석어 참으로 지혜로웠던 한 인물이 떠오릅니다. 오래 전, 평북 정주 오산학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당시 그 동네에서 아주 똑똑하긴 한데 가난해서 학업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청년의 하루 일과란 날마다 이른 아침이면 기상을 알리는 주인의 헛기침소리를 듣고 난 뒤, 화장실이 외부에 따로 떨어져 있는 고로 밤새 볼일을 본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집주인은 청년이 언제나 자기 일을 열심히 충실하고도 마음 다해 하는 것을 눈여겨보다가 어느 날 그 청년이 머슴살이의 삶으로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평양 숭실학교로 보내 뒤늦게나마 학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청년은 마침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일본유학까지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다 마친 후 청년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어 후학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조선의 간디’라고 불리는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입니다. 우리를 허세로이 치장하는 각종 직책에, 타이틀의 무게에 취해 거만스레 처신하거나 그 자신의 이기적인 지식과 판단에만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거룩한 이끄심 안에 겸손과 성실의 자세로 가르치셨던 선생에게 제자들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을 물으면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예수님의 사랑(요한 13장 참조)을 따라 언제나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 작고 비천하게 보이는 일에 충실하며 일과성을 다해 최선으로 실천한 청년 조만식의 그 속마음을 꿰뚫어 보셨던 하느님께선 얼마나 기뻐하셨을 것이며, 주님 은총의 거룩함이 그 작은 사랑의 봉헌과 실천 안에서 더 크게 영광되이 그리고 명징(明澄)하고도 우렁차며 힘차게 이 혼탁한 세상에 또 얼마나 기꺼이 울려 퍼져 나갔을 텐가 …. 졸업과 더불어 새 학기를 준비하는 2월, 한허리에 모두가 머리만 꼿꼿이 쳐들려지기를 바라고 굽힐 줄 모르는 둔탁한 목덜미가 뻣뻣한 세상 속에서 요강 닦는 마음의 낮은 무릎 꿇음과 더불어 우리 주님 닮은 겸손과 이탈과 사랑이 속마음을 다시금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부디 우리 각자 각자가 구원 받은 주님의 성전(1코린 3,16 참조). 임을 익히 깨달아 십자가의 거룩한 지혜인 희생과 사랑을 더욱 잘 실천하여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네 매일매일 삶의 모든 요강마저도 겸손되이 기꺼이 닦으시는 성모 마리아님, 당신의 낮은 자리를 항상 깊이 새기며 저희가 주님과 함께 서로의 발을 씻어주고 매일 매일의 요강을 닦는 사람, 혼탁한 세상 한가운데서 그 거룩하고 겸손된 사랑의 충실한 증언자가 되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전주교구 이봉석 노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