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 가는 게
싫지는 않냐 물으면
"흥, "흥, 콧방귀나 뀌었으면 좋겠네
/ 이시하 <나쁜 시집> (천년의 시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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