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配慮)의 힘]
배려(配慮)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 또는 관심(關心)을 가지고 도와주거나 마음을 써서 보살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배려와 양보(讓步)는 손해(損害)라는 인식(認識)을하고 내가 잘되고 편(便)하기 위해서는 남의 손해는 당연(當然)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世態)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인(他人)의 행동(行動)과 대화(對話)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自身)의 손익(損益)과 비교(比較)해 계산(計算)하며 먼저 의심(疑心)하는 세상(世上)은 너무 나 삭막(索莫)합니다.
누군가가 비관(悲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그 원인(原因)과 시스템에 대한 비판(批判)보다 경쟁(競爭)에서 뒤처진 사람, 패배자(敗北者), 못난 사람이라고 치부(置簿)합니다. 그저 돈이 많은 게 그 사람의 인격(人格)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되며, 착하고 마음이 좋은 사람은 그저 바보로 불리거나 세상 물정(物情)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가기에 십상(十常)인 세상입니다.
일본의 여류작가(作家) ‘미우라 아야코’가 조그만 점포를 열었을때 장사가 너무 잘 돼 트럭으로 물건(物件)을 공급(供給)할 정도로 매출(賣出)이 쑥쑥 올랐습니다.
그에 반해 옆집 가게는 파리만 날렸습니다.그때 그녀는 남편(男便)에게 솔직(率直)한 심정(心情)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 가게가 잘되고 보니 이웃 가게들이 문(門)을 닫을 지경이에요. 이건 우리의 바라는 바가 아니잖아요?”
남편은 그런 아내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가게 규모(規模)를 축소(縮小)하고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주곤 했습니다.
그 결과(結果) 시간이 남게 되었고 평소(平素) 관심있던 글을 본격적(本格的)으로 쓰기 시작했는데,그 글이 바로 저 유명(有名)한 <빙점(氷點)>이라는 소설(小說)입니다.
그녀는 이 소설을 신문(新聞)에 응모(應募)하여 당선(當選)되었고, 가게에서 번 돈보다 몇 백 배의 부(富)와 명예(名譽)를 얻었으니 그것은 그녀의 빛나는 ‘배려’덕분(德分)이었을 것입니다.
배려는 사소(些少)한 관심에서 출발(出發)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姿勢)로
상대방(相對方)의 처지(處地)를 헤아리다 보면 배려의 싹이 탄생(誕生)하는 것입니다. 배려는 거창(巨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작은 배려가 세상을 행복(幸福)하게 만듭니다.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갖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우아(優雅)하고 아름답게 하는 방법(方法)은 배우지않으면 안 됩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남과 원만(圓滿)하게 지낼 수있는 배려의 기술(技術)은 충분(充分)히 배울만한 가치(價値)가 있습니다.
그럼, 배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그사람에 대해 적극적인(積極的)인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말한 곳을 직접(直接) 가보거나, 그가 말한 것을 해봅니다.
그리고 간단(簡單)하게 그 느낌을 전(傳)해주면 바로 그것이 배려입니다. 쉽게말을 걸기 힘든 사람, 주변(周邊)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가 사랑하는 가족(家族)에 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관심거리에 초점(焦點)을 맞추어주는 배려이며,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지요.
우리가 행복 하고자 한다면, 먼저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애정(愛情)을, 정성(精誠) 어린 배려를 베풀어야 하지요. 우리는 상대의 바람과 결핍(缺乏) 등을 우리 자신(自身)의 내면(內面)에 비추어 찾아내야 합니다.
결국 진정(眞正)한 배려를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바람과 결핍등을 읽어내야 합니다.
논리(論理)로 사람을 설득(說得)할 수없습니다. 감정(感情)을 움직여야 하지요. 자신이 잘못했다면 스스로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認定)하고 곧바로 사과(謝過)해야 합니다.
자기(自己)가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 세세(細細)한 점까지 따질 필요(必要)는 전혀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사과하는지 생각하며 그 사람의 행동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른 사람의 호의(好意)를 누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분명(分明)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들의 이름을 기억(記憶)하고 그들이 중요(重要)한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즉, 그들을 주인공(主人公)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도 가끔은 ‘조금 져주면 좀 어때’라는 심정(心情)으로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배려는 결코 상대에 대한 예의(禮儀)를 지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의란 원래부터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습(慣習)입니다. 예의가 바르다는 것은 이미 많은 부분 상대에게 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례(無禮)하고 거친 태도(態度)는 빗장을 걸고 마음의 문을 닫게 합니다.
그렇지만 친절(親切)하고 예의 바른 행동은 모든 곳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행동 앞에서는 빗장이 걸려 있던 모든 문이 차례(次例)로 열립니다.
배려는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막론(莫論)하고 모든 이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모임에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자리에 앉자마자 즉시 자기소개(自己紹介)를 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도 그냥 계속(繼續) 앉아만 있으면 그것만큼 답답하고 지루한 모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입을다물고 있으면
그 일이 가치가 있으나, 스스로 사람들에게 자랑하면 효과(效果)는 반감(半減)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쓰면 이 세상 전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집니다. 고독한 사람이나 의기소침(意氣銷沈)한 사람에게
한두 마디 부드러운 말을 걸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친절(親切)하게 대접(待接)받은 그 사람은 우리의 배려를 일평생(一平生) 가슴에 품게 될 것입니다.
속담(俗談)에 ‘콩 한 쪽도 나눈다.’는 말이있습니다. 우리네 선조(先祖)들은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결코 빗장을 걸거나 담장을 쌓아 이웃을 외면(外面)하지않았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인정(人定)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희망(希望)의 끈이 되어주면서 살아왔습니다. 넉넉해서 곳간을 열어 나누었던 것이 아닙니다. 비록 오늘 나누고 내일 모자랄지라도 이웃의 아픔과 고픔을 결코 나 몰라라 하지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목숨을 부지(扶持)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이 필요합니다.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 서로 돕고 의지(依支)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행하여야 할 배려의 힘이 아닐는지요!<덕산 김덕권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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