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노파 (Old woman in praying, 1656)☆...성 화 이 야 기 °♡。
제 목 : 기도하는 노파 (Old woman in praying, 1656)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6) 가장 순수하고 열렬한 통교의 수단으로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기도의 전통에 있어 어느 종교 못지않게 심원하면서도 풍요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바치는 성무일도의 기도는 그 내용면에 있어 기도의 완벽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매일 수도자들의 공동체에서 바쳐지는 기도의 모습은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움 감동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삶의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연만한 여인의 기도는 더 숙연한 심정을 느끼게 만들며, 어느 기도 못지않게 하느님이 안배하셔서 기도하는 사람의 근심을 들어준다는 내용이 성서 여러 곳에서 제시되고 있다. 사무엘 상권 1장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한 처지에 아들을 얻은 소실로부터 온갖 멸시를 받자, 설음에 북바쳐 하느님께 아들 하나를 점지해 달라는 한나의 기도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게 만들고 있다. 자식 낳지 못하는 여자라는 수모를 벗어나게 된 한나가 바치는 감사의 기도는 신약에서 예수를 잉태하고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만난 자리에서 성모님이 바친 아름다운 찬가의 모델이 되고 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던 렘브란트의 제자로 보내 그로부터 그림을 배우게 했다. 어둠과 빛을 구분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표현함으로서 관객들의 작품 이해를 돕게 만들었다. 특히 서민들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따스한 모습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작품이 주는 감동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며, 어떤 성서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인으로서 가장 숭고한 표현인 기도의 내용을 너무도 감동적이면서 심원하게 표현하고 있다. 만고풍상을 겪어 고운 것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얼굴과 거친 모습의 손은 그가 얼마나 척박한 인생을 살았는지를 알리는 이력서와 같다. 독신녀로 살게 되었는지, 아무튼 아무도 보살필 사람이나 의지할 데가 없는 데가 없는 것이 현 처지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두 덩어리의 빵, 연어인 듯 보이는 절인 생선 두 토막, 차 주전자 하나, 식사 전에 먹기 위한 국그릇 하나, 초라한 이런 것들이 고독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노파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더 서글프고 초라하게 보인다. 이 식탁이 하느님을 향한 감사로 충만한 훈훈한 식탁으로 만들고 있다. 이 식탁을 신앙의 경건함이 주는 기쁨의 분위기로 변모시키고 있다. 맑으면서도 훈훈하게 보인다. 신앙적 확신 때문에 어떤 화사한 식탁에 앉은 사람들과도 비길 수 없는 조용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기도하는 자세로 너무도 자연스러운 손을 모은 자세는 13세기부터 시작되었고 초 세기에는 양손을 들고 기도를 바쳤다. 한마디로 어느 수도자 못지않는 기도의 달인이며 다음 시편이 몸에 녹아 있는 크리스챤이다. 나이 늙어 이 몸을 버리지 마옵시고 내 기운 다하였을 제 던져두지 마옵소서.”(시편 71장 5,9) 식당이 원채 옹색하기에 이 공간이 노파가 보관해야 할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납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네덜란드는 개신교 중에도 호전적이며 가톨릭 적인 것에 대한 적대감을 느끼기에 성화나 성상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서 특별한 화풍을 창출했는데 이것이 바니타스(Vanitas)라는 그림이다. 모래시계를 많이 그렸는데, 노파 역시 살 인생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알라는 교훈의 뜻을 전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암담한 노파의 내일에 약속된 밝은 면을 보이고 있다. 하느님께서 그를 천상 낙원에 들게 하시리라는 철석같은 믿음이 있기에 초라한 식탁 앞에서의 외로운 처지에서도 너무도 평온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소재를 통해 기도 안에서 할 수 있는 삶과 신앙의 긍정적인 면을 너무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6) 종교가 미개한 단계에서는 이것이 신도 확보의 효과적 수단으로 행세하기도 한다. 하느님과의 합일의 경지에 드는 것을 말한다. 그냥 조건 없는 사랑의 표현임을 전하고 있다. 크리스챤 기도의 핵심을 찌르고 있기에 어떤 수도원에서 바치는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기도가 줄 수 없는 기도의 감동을 주고 있다. 창가에 있는 노파의 일용품등은 삶의 생기 보다는 서글픈 정서를 주는 것도 사실인데, 작가는 절묘한 빛의 처리를 통해 밝은 경쾌함을 선사하고 있다. 경건한 기도를 바치고 있는 노파와 달리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식탁을 할퀴고 있다. 기도의 핵심을 너무도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했기에 특정 종교가 주고 있는 편견에서 해방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 노파는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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