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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현 시 모음 45편/그도세상|―········

수성구 2017. 12. 13. 03:37

도지현 시 모음 45편/그도세상|―········친목ノ자유게시판

       

도지현 시 모음 45편
☆★☆★☆★☆★☆★☆★☆★☆★☆★☆★☆★☆★
《1》
9월에 드리는 기도

도지현

9월엔 기도 하나니
갈바람 황량하게 불어도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는
봄에 부는 훈풍이게 하소서

가을 들녘의 풍요로움
풍요 속에도 빈곤은 있나니
누구의 마음속에서도
시름과 한숨이 없게 하소서

시리게 푸른 하늘 아래
시나브로 붉어가는 산야
그 붉음이 많은 이의 가슴에
사랑 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여름 내내 괭이질 한 농부의
가슴 골로 여울지는 땀
힘들여 일한 그들에게
풍요를 가득 안겨주게 하소서

삭막에 물드는 계절이지만
바람 속에 낭만이 묻어오니
촉촉하게 젖어드는 가슴 되어
모든 이들이 시인이게 하소서
☆★☆★☆★☆★☆★☆★☆★☆★☆★☆★☆★☆★
《2》
9월의 당신은

도지현

어느새 창가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나붓하게 내려앉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가슴에 알알이 수를 놓아요

소슬한 바람이
시린 가슴에 파고들면
뻥 뚫린 마음 때론 허전해져요

그렇게 푸르던 잎새
점점 갈 빛으로 가고 있어
나를 보는 것 같아 애잔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여물어 가는 계절
9월의 당신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
《3》
10월 序曲

도지현

스산한 바람이 불어
가슴까지 시려 오는 날이다
까칠해진 살갗에
송골송골 맺힌 소름들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
계절을 돌아 날아온 기러기들
무사히 사열식 끝내고
안착한 들녘은 허허롭다

비워지는 것이 있으면
다시 채워지는 것도 있기에
가슴 가득 고여오는
은은한 국화 향기가 정겹다

이제 곧 서리 내리겠지
텃밭의 채소들 걷어 들여야겠다
이것저것 가름해 두어
겨우살이 밑반찬으로 유름 하리
☆★☆★☆★☆★☆★☆★☆★☆★☆★☆★☆★☆★
《4》
11월에 쓰는 시

도지현


스산한 바람이 말을 한다
떠날 때가 되었다고
그리고
또 올 때가 되었다고

밀려가야 하는 것은 가야하고
또 와야 하는 것은
와야 하는 것
다 시가 있고 때가 있다고

순환하는 것은 생명이 있어
밀려갔다가
또 밀려온다고
그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

가슴 아픈 별리는 있을지라도
만남의 희열도 있으니
우리
더 이상의 눈물은 보이지 말자고
☆★☆★☆★☆★☆★☆★☆★☆★☆★☆★☆★☆★
《5》
가끔은 나도

도지현

언제부터였을까
시나브로 젖어드는 외로움
하늘 빛깔만큼이나 시리다

소슬한 바람 속에
억새의 노랫소리 구슬프고
외로운 나도 같이 구슬픈데

파도 소리 철썩하면
내 가슴이 아프고 파랗게 멍들어
온몸이 오그라드는 고통이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저 갈매기들은 얼마나 좋을까
나도 훨훨 날아 보고 싶은데

가끔은 나도 고치가 우화 하듯
새롭게 태어나 저 하늘 위, 구름 위를
훨훨 날아 현실을 탈피해 보고 싶다
☆★☆★☆★☆★☆★☆★☆★☆★☆★☆★☆★☆★
《6》
가슴에 묻은 그리움 하나

도지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리움 하나 묻어 두고 있다

보고 싶어
견디다 견디다 견디지 못할 때
살며시 꺼내 보는 그리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 같은 것
몰래 꼭꼭 숨겨 두었다

외로울 때
그래도 내 안에 네가 있다는 것
그래서 위안을 삼지

긴 여정에서
너와 함께 할 수 있기에
살아갈 버팀목이 되고 외롭지 않아
☆★☆★☆★☆★☆★☆★☆★☆★☆★☆★☆★☆
《7》
가을 수채화

도지현

반려할 수 없는 세월 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은
온 산야를 불태우고
시나브로 가슴까지 물들인다

갈바람으로 흐르는 구름은
물빛 그리움으로
야멸차게 머문 하늘에
한 땀 한 땀 사랑을 수놓았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광대한 캔버스에
오색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다

누군가의 사랑이 되고 그리움인
가을의 서정에 젖어들면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시인, 또는 화가가 아니 될 수 없어라
☆★☆★☆★☆★☆★☆★☆★☆★☆★☆★☆★☆★
《8》
가을 어느 날 오후

도지현

갈 빛 그리움이 하늘에 걸렸다
서걱거리며
시린 가슴에
서늘하게 다가서는 계절의 순환

결코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시나브로 다가서는
갈색 눈동자를 가진
외로움에 젖어 든 가을 닮은 그대

흐르는 물조차도 계절을 담아
낙조를 품어 안고
나무에게 얻은 갈색 배 띄워
정처 없는 길을 흐르고 흘러간다

쓸쓸함이 감도는 가을의 하늘빛
바라보는 눈도 시리고
가슴까지 싸해지는
소슬한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의 오후
☆★☆★☆★☆★☆★☆★☆★☆★☆★☆★☆★☆★
《9》
가을비 내리는 날의 그리움

도지현

그리운 이여!
우린 뜨거운 가슴으로 비속을 걸었지
식지 않은 열정으로 가슴은 고동치고
뜨거운 눈길이 사랑의 언어가 되었지

눈물겹도록 사랑하던 이여!
하염없이 흐르는 빗속을
뜨거운 체온으로 서로 녹여가며
하나의 우산으로 서로 받쳐 주었지

이렇게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그 날의 뜨거운 열정
그 날의 뜨거운 포옹
그 날의 뜨거운 입맞춤 지금도 생각 나

보고 싶은 이여!
이제는 볼 수 없다 하여도
내 가슴속엔 그대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니
그대는 영원한 사랑 나의 사랑, 나의 분신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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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가을엔 모두가 그리움이더라

도지현

가을빛에 물든 잎새
온 산야를 불태우면
가슴속에서도 타오르는 불길
아직 잊지 못한 그리움이다

하얀 머리 풀은 억새
바람 속에 흐느끼는 소리
오지 않는 임 기다리다 지친
그리움의 한 서린 노래이던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가슴을 싸늘하게 적시면
임 그리워 눈물 지는
내 가슴에 내리는 차가운 비

눈을 돌리는 곳마다
애잔한 그리움에 머무는
이 가을엔 가슴 시리게 하는
모두가 그리움 아닌 것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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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가을은 가을은

도지현

가을은 바람부터 색깔이 다르다
붉은 바람이 불어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고
마음마저 붉게 물들이는 계절이다

가을엔 코를 스치는 내음에서
커피의 향기가 스며들어
그이의 체취와 닮아서일까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계절

가을의 미소를 보면 황홀의 극치
혈류를 타고 도는 전율에
어쩌지 못하는 오르가슴
눈으로 가슴으로 전신에 퍼진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축복
황금빛 바다의 잔물결
가을은, 가을은 아름다움과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주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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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

도지현

기찻길 옆 곱게 핀 코스모스가
산들바람 불어오니
홍조 띈 얼굴로
하늘거리며 어여쁘게 춤을 춥니다

부끄러워 다소곳이 숙인 고개
고추잠자리 날아오자
부끄러움도 잠시
허리를 꼬면서 교태를 부립니다.

그 모습에 반한 고추잠자리
코스모스 주위를 맴돌며
긴 꼬리 힘주며
멋진 모습 한껏 과시하고 있습니다.

한낱 미물도 저러하거늘
아름다운 계절
이 가을은
사랑하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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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가을의 노래Ⅰ


도지현

가을의 푸른 하늘에
붉은 낙엽의 팔랑거림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됩니다

갈바람 스치는 서걱거림
가슴속에서 들리면
살며시 귀 기울이는 밀어입니다

뜨락의 귀뚜라미 소리가
오늘따라 정겹게 들려
포근하게 가슴을 적셔주는데

활활 타오르는 산자락
낙조와 조우하면
마음까지 붉음으로 물듭니다

가을은 모든 것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는 계절
낭만의 강이 여울져 흐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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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가을의 속삭임

도지현

귓속을 파고드는 그리움의 언어들
스산한 바람결에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데

떨어지는 잎새 위로 흐르는 눈물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온 세상이 무심하게 가고 있어
돌아앉은 세월이 눈물겹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꽃이 피면 지고, 세월 가면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을

소슬한 바람결에 들리는 소리
너무 서러워하지 말라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가을이 그렇게 전하라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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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가을이 가기 전에

도지현

갈 빛 그리움에 물든 마음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떨어지는 잎새에 눈물짓는데

언젠가는 만나려니 하지만
그것이 언제일지 몰라
기다림의 순간은 여 삼추

이 가을 가기 전에 만나
노란 은행잎 깔린 거리를
두 손잡고 걸어보고 싶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무언의 대화에 심취하고
두 가슴에 통하는 길을 내자

모든 것이 알알이 결실 맺는
이 가을에 우리 사랑도
튼실한 열매를 맺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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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대 아시나요

도지현

이제 감성도
서걱거리고 먼지가 풀썩 나는
남새밭 한 귀퉁이가 되었나 봐요

촉촉이 내리는 비가
유리창에 와서
나름의 수채화를 그려도
예전 같은 감정이 나지 않으니까요

그때 스카브로의 추억을 들으며
보랏빛 감정에 휩싸여
엮인 시선 풀지 못해
얼굴 붉히던 시절 있었던 것을

오늘 같이 비 오시는 날
촉촉이 젖어 드는 가슴속에서
살며시 고개 들어야 하는데
그대 아시나요
그 감정마저 메말라 버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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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대의 가을은

도지현


낙엽 흩날리고
햇살 찬란한 날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투명한 유리알 같아 눈이 부신다

빛의 산란으로
파랗게 물든 하늘은
가을 특유의 구름을 만들어
구름 사이로 보이는 태양은
마지막 빛을 쏘아 주기에 힘에 겹다.

서서히 기울어 가는 태양으로
흰 구름은 붉게 변하고
가로수의 초록빛도
탈색되어 노랗게 변하니
가을의 낭만으로 깊이 빠져드는데

때때로 쓸쓸해지는 마음
어딘가 훌쩍 여행을 가고 싶다
아름답게 채색된 가을의 숲
내 마음이 이러할 진데
그대의 가을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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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리움 1

도지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당신 그리움에
겨울 바다를 찾았어요.
너울진 바다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투박한 방파제에 부딪칠 때마다
나대신 통곡을 하는데
내리는 함박눈은 눈물이 되어
네 가슴에 여울져 흐르니
당신 아시나요
이 눈물의 의미를...
잊혀지지 않는 당신 그리움에
차가운 바다의 망부석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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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리움으로 나는 새

도지현

내가 가는 길엔
늘 그대가 있었다
먼 옛날부터 있었기에
언제나 있을 줄 알았다

물 속에 있는 고기
늘 숨을 쉬고 있는 공기
그래서 물도 공기도
귀한 줄 모르고 살았지

그대가 없는 날부터
나란 존재가 보이지 않아
숨도 쉴 수 없고
눈도 감을 수 없어

이젠 내가 그대 찾아
어디론가 는 가야 해
땅에서 찾다 못 찾으면
하늘에서라도 찾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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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기억을 걷는 시간

도지현

하얗게 바래진 기억 속에
흐려진 렌즈의 초점
가물가물해지는
빛 바랜 기억을 잡고 있습니다.

서리꽃은 하얗게 피었고
가야 할 길은
얼마나 남았을까
지나온 시간 회오만 남습니다.

텅 비어 버린 공간 속에
차곡차곡
채워 나가는 기억들
더 이상 채워지지 않아 애끓는 마음

엉켜진 실타래 같이 풀리지 않는
연무 속을 헤매며
시간이란 외줄을
바우덕이 처럼 아슬아슬하게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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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깊어 가는 가을 속에

도지현

적막이 흐르는 고즈넉한 밤에
무르익어 가는
가을을 알리는가
알밤 익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계절이 한 무언의 약속이었던가
해 마다 이 맘 때면
알밤 터지는 소리가
깊어 가는 가을을 예고해 준다.

알밤 터지는 소리 들리면
내 가슴속에도
싸하니 찬바람이 불어
휑하니 빈 가슴 시리디 시리다.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는 단풍
낙조에 물든 하늘
내 인생도 저러하리라
이제 곧 서리꽃도 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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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낙엽

도지현

창 너머에 세월이 진다
시나브로 저물어가더니
어느 결에 가뭇없이 사라진
그 세월 속에 나도 지는데

세월 끝에 걸린
가년스러운 목숨이
가랑가랑한 목소리로
쉼 없이 뱉어내는 소리가
안쓰러워 가슴이 아프다

살아도 산목숨 아닌
죽어도 죽은목숨 아닌
그 삶 속에서 버틴다는 건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선 것

세월 끝에 선 너나 나나
어디 하나 다를 바 없는
모태는 달라도 일란성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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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낙엽 편지

도지현

일체의 번뇌를 해탈하고
니르바나에 이른
한없는 가벼움이여

모든 가진 것 보시하고
겸양과 겸손의 미덕으로
끝없는 헌신과 희생을
몸소 실천한 지혜로움

새털 같은 가벼움으로
한 세상 살다가
보살의 마음으로
정토를 향하는 아름다움

이제 그대에게 보내리
비로자나불 되라
축원하는 내 마음의 서신을
☆★☆★☆★☆★☆★☆★☆★☆★☆★☆★☆★☆★
《24》
낙엽이 가는 길은

도지현

자연이나 사람이나
머물러 있어야 할 때와
스스로 떠나야 할 때가 있더라

한 세상 살아가며
제 소임을 충실히 마치고
미련 없이 훌훌 털고
깃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며
남은 자양분
머무는 자에게 헌신하는 것

청청한 올곧음으로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고
허허한 가슴 되어
홀연히 떠나는 길은
보시와 희생의 길이어라
☆★☆★☆★☆★☆★☆★☆★☆★☆★☆★☆★☆★
《25》
내가 그렇듯이 당신도

도지현

세월이 가며
당신 그리움이 더욱 짙어져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메이는데
나는 이렇게 아파하는데

내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지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당신의 잔상
아직도 남아
뇌리에서 지워낼 수 없는 걸

진정 사랑했고
내 순백의 마음 당신으로 하여금
붉게 물들이고
당신을 내 전부라 생각했는데
진정 알고 싶어요
당신도 그러하신지요.
☆★☆★☆★☆★☆★☆★☆★☆★☆★☆★☆★☆★
《26》
너를 그리워하며

도지현

닫았던 마음
그 척박한 자리에
질긴 생명력의
담쟁이 넝쿨이 타고 오른다

그 여린 손으로
얼마나 잘 타고 오르던지
뇌리까지 올라와
기억 장치를 열어 버렸어

왜 하필 네가 그 자리에 있어
다시 그리워하게 하고
모든 사물이 너로 보일까

너와의 시간들
투명한 이슬에 알알이 그려져
한 편의 영화가 되어
그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
☆★☆★☆★☆★☆★☆★☆★☆★☆★☆★☆★☆★
《27》
늦가을 소묘(素描)

도지현

붉음은 붉음대로
노랑은 노랑대로
더는 찬란할 수 없는
빛을 발하더니

이젠 시나브로
사위어 가는 모습에서
이울어 가는 내가 보여
가슴이 저미고 아프다

왜, 저 하늘은
그 푸름을 벗어버리고
잿빛으로 변해가며
눈물을 그리도 흘리는지

쪼그라들고
이랑 진 그 모습은
내어줄 것 다 내어준
울 엄마의 눈물 젖은 손등
그래서 더 애잔타
☆★☆★☆★☆★☆★☆★☆★☆★☆★☆★☆★☆★
《28》
만월의 한가위

도지현

휘영청 보름달 가슴에 안겨오면
그 가슴 안에서 눈물이 흐른다

울 엄마 가신지 어느덧 20여 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엄마 모습

알뜰하고 살뜰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치신 살림살이

명절마다 간절한 염원이 된 보고픔
그 세상은 이 명절에 무엇하시는지

송편이랑 알 토란 드실 수나 있을까
좋아하시던 섭산적은 드시는지

두둥실 떠오른 만월에 그려보는
곱디고운 울 엄마 모습 보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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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사랑은 그러하더라

도지현

한때는 죽을 것 같았지
두근거리는 가슴 터질 것 같아서
옆에 있어도 보고 싶어서
보고 돌아서도 또 보고 싶어서
서성이는 그리움 목마른 사랑 때문에
보고 또 봐도 늘 새로운 감정
그런데 그것도 한때더라
메마른 바람이 서걱거리며 지나가고
늦가을 찬 서리 한차례 내리더니
가슴마저 싸늘하게 식는가 했는데
왠지 모를 아쉬움 미련이 남았는지
잊겠다, 잊어야지 도리질하며
앙다문 입, 혀까지 깨물었는데
봄날의 아지랑이가 되어
사부작사부작 되돌아오는 건
☆★☆★☆★☆★☆★☆★☆★☆★☆★☆★☆★☆★
《30》
아픔을 수반한 사랑이지만

도지현

의식하지 않은 동안
시나브로 숯으로 변한 가슴
켜켜이 앉은 상흔, 더께가 되었다

두터운 지층을 이룬 더께
심장의 중심부까지 이르고
혈류는 잠깐씩 기능을 잃어간다

파도로 밀려온 고통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온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 없다

일상을 가슴앓이로
지탱해야만 하는 야윈 가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은

☆★☆★☆★☆★☆★☆★☆★☆★☆★☆★☆★☆★
《31》
어디든 떠나고 싶은 이 가을

도지현

어디든 떠나고 싶다
하늘 푸르고 마음 시린 날
바람까지 솔솔 불어
역마살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온 산야를 붉게 태우는
가을의 잎새는 마음을 잠식하고
붉게 물드는 이 가슴
무언가든 담아 태우고 싶은데

낙엽 밟는 소리 서걱거려
가슴까지 바스러진 가랑잎
어딘가에 있을 포근한
엄마의 품속을 찾아가고 싶어

낭만에 젖고, 향수에 젖는
낯선 거리의 에트랑제가 되어
이 거리 저 거리를 배회하는
이 가을 나는 보헤미안이고 싶다

☆★☆★☆★☆★☆★☆★☆★☆★☆★☆★☆★☆★
《32》
촛불 하나 켜는 마음으로

도지현

어둠의 긴 터널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삶

음습한 공기
호흡도 가쁘고 힘들었지

삶의 후미진 뒤안길
무거운 어깨, 등에 진 짐

내려놓을 수 없고
내려놓아서도 안 되는 것들

이랑지고 투박한 손
더 이상 지칠 것도 없는 삶

암담하였기에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였지

그러하지만 우리들 여명은
어둠을 걷어가 새로운 태양
찬란하게 밝았으니

우리들 가슴마다 에
작은 촛불 하나 켰음 좋겠어요

소망 깊은 마음으로
절망의 장막 걷어가 버리게

희망의 촛불 켜서 새해엔
환하게 밝은 세상 만들기를...
☆★☆★☆★☆★☆★☆★☆★☆★☆★☆★☆★☆★
《33》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도지현

삶이란 굴레를 가슴속에 안고
응어리지 마음
용해되지 않은 고통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내가 풀 숙제다.

섬광처럼 번쩍이는 혜안을 가지고
엉켜 있는 실타래
한 가닥씩 풀어야 하는
그것도 나 자신이 해야 하는 것

눈을 뜨고 사물을 보면 가물가물
모든 것들이 어지럽고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 같은 것
그래도
두 발 버텨 서서 꼿꼿이 서리라.

산다는 것이 때론 고통일지라도
쓰디쓴 사약 같은 고통
달콤한 꿀처럼
녹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
《34》
한 조각 삶에 머물며

도지현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왔을까
수많은 의문이
뇌리에서 톱니바퀴로 돌아간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념은 미궁으로 깊이 빠지고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지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부랑인

그래, 광활한 우주에서
티끌보다 더 작은 먼지 하나야
그런 줄 알면서도
버릴 수 없는 삶에의 애착

한 조각 삶을 부여안고
아귀다툼하지 않을 수 없는
세속에 물든 이 마음
삶이란 그런 거라 자위해보는데

☆★☆★☆★☆★☆★☆★☆★☆★☆★☆★☆★☆★
《35》
황혼이라는 이름 앞에

도지현

긴 세월 나는 무엇하며 살았나
허허한 마음
검불 같이 말랐고
말라버린 영혼의 외침 소리 들린다.

낙조에 물든 하늘은 쇠진하고
나 또한 기력을 잃어
옹이가 진 가슴은
거북의 등처럼 말라가고 있는데

그러할지라도
예전엔 무성한 잎새도 있었고
알알이 고운 열매
내 품에 품어도 보았었지.

이제는 긴 겨울잠에 들어가고
어둠이 지나가면
밝은 빛이 오리니
황혼이 오더라도 서러워 말자

☆★☆★☆★☆★☆★☆★☆★☆★☆★☆★☆★☆★
《36》
갈색 도시에서

도지현

태양이 쉬러 가는 시간
낙조에 물든 거리
오고 가는 이들의 가슴엔
서늘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낙조와 동화하고
점점이 남긴 얼룩
짙게 깔린 보도 위에
유유상종, 부화뇌동이다

노을 빛에 물든 빌딩
그 사이사이로 부는
바람 또한 노을 빛인데
바람소리마저 서걱거린다

황량한 바람이 부는 보도
낙엽이 뒹구는 쓸쓸함
부산한 발길조차 외로워 보이는
갈색 도시의 에뜨랑제
☆★☆★☆★☆★☆★☆★☆★☆★☆★☆★☆★☆★
《37》
겨울이 걷는 소리

도지현

타박타박 걷는 소리가
땅 끝에서 들리는가 했더니
언제 내 문전에 와서
푸른 입을 내밀고 들어오겠단다

남루한 입성에 얼은 몸
가년스럽고 처량해
끝내 문을 열어 주어야 했다

빙하보다 더 차가운 몸
내 뜨거운 가슴으로 녹여
한 계절 따뜻 하자 했는데

기어이 가야 한단다
저 차가운 벌판을 지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다른 세상으로
온 천지에 하얀 서리꽃과 눈발 날리며
멀리, 또는 가까이 들리는
타박타박 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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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고독이 머무는 창가에서

도지현

어두워지는 창에
고독이 우수수 떨어져
얼룩으로 번지고 있다

얼룩은 점점 자라나
거대한 장막을 만들어
그대로 나를 휘감아 버리는데

속절없이 갇혀버린
어두워진 내 마음
그 장막과 나는 하나 되어
고독 속으로 빨려 든다

고독이 나인지
내가 고독인지 모를
차가운 늪 속에 떨어지는데

가슴 광장에
서늘한 바람이 불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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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꽃무릇 속에서

도지현

등줄기에 여울진 땀이
서늘한 바람에 말라 간다
인적은 있으나
스스로 침묵해주는 예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스님의 목탁 소리에 여민 옷깃
스스로 정적 속에 빠져
속세에서의 번뇌가 사그라진다

길상 사 가는 길은
마음속에 고뇌가 한 짐
낙타의 혹이 되어 가는데
목탁 소리 듣다 보면
천 근이 던 발길 한 근도 안돼

한 발 한 발 옮기는 길에
붉게 피어 있는 꽃 무릇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하는
애잔한 네 속에서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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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당신께 드리는 가을 편지

도지현

오늘따라
달빛은 왜 저리 밝고 푸른지
빛을 받는 모든 것들에
파란 심줄이 투명하고
그 속엔 그리움이 스며있네요

그러지 않아도
당신 생각에
불면으로 뒤척이는 밤

뒤란 은행나무
스쳐 가는 바람 소리에
마음마저 스산해지는데
나 대신해 울어주는 귀뚜라미
이 밤의 적요를 깨웁니다

기억의 숲에 머물던
당신과 함께 한 순간들이
뇌리를 스치면
목울대까지 차 오르는
슬픔을 삼켜야 함은 일상입니다

이 밤 당신 그리움에
푸른 달빛에 쓴 편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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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바다 그 영원한 그리움

도지현

나의 바다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어
내 마지막 염원조차
이루지 못할 슬픔의 무게는
이 우주와 비교할 수 없다.

가슴 심연에 앙금으로 남은
그리움의 무게는
거대한 맷돌이 되어 누르니
호흡조차 할 수 없어
살아도 살아 있는 것 아니다

영원한 이데아
나의 바다는 적어도 그랬다
이제 꿈도 희망도 잃었기에
빛바랜 사진 하나 가슴에 품고
꿈에라도 뵙기를 청해보는데

*바다는 필자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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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빛 바랜 일기장에서

도지현

묵혀둔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세월의 때가 낀
빛 바랜 일기장을 발견한다

이젠 낯설어 신기하기까지 한
월척을 건져 올리는 기분
동시에 가시가 가슴을 찌른다

나비가 우화 하여 날아가듯
내 곁에서 가버린 사람
첫사랑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노트 하나가 세월을 되돌려 놓는다

여름에도 스산했던 그 간이역
키다리 접시꽃 잎새가
우리의 밀어를 엿듣고 있었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가슴 한켠이 싸하니 바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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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슬픈 개밥바라기별

도지현

더 넓은 우주 공간에서
탕아가 되어 부평초로 떠돌며
은하계의 어둠에 묻혀
자신의 자리마저 잃었다

방황하던 긴 세월 동안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개털 신세
그래도 반짝이고 싶은 열망
가슴 심연에 내재하였었지

음울한 고독 속에서
소 쓸개보다 더 쓴맛을 보고
잡초가 되어 밟히고 밟혀
모든 것 포기하려 했는데

그래도 자존은 살아있어
저녁놀 물든 끄느름한 시간에
서녘 하늘을 희미하게 밝히는
슬픈 눈동자의 개밥바라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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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시월이 가는 소리

도지현

추수 끝난 들녘에
외롭게 서 있는 허수아비
걸러주지 못하는
갈바람 소리가 가슴에 울리고

낙엽 밟는 소리가
바람 소리와 함께 들리면
가슴속에서 이는 바람
비수 되어 촘촘히 저미는데

귀뚜라미 소리마저
서서히 잦아들어 고적한 밤
인적마저 끊긴 길에
전선은 왜 그리도 우는지

가슴 시린 그리움
마른 가슴 촉촉이 적시는데
덜컹거리는 덧문은
어찌하라 이리도 요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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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하늘 곱게 피던 날

도지현

건들마 살짝 불 때마다
하늘이 곱게 피어난다

가을 장미가 활짝 피어
향기로 취하게 하더니
뒤이어 국화꽃 피어나
노란 꽃가루로 흩날려
온 세상이 화사하게 피었다

신기한 자연의 묘기는
끊임없이 이어져
하늘 곱게 피우고
세상 곱게 피워서
어제는 어제대로
오늘은 오늘대로 아름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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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아니 온다 했을지라도

도지현

더는 소생하지 못한다 했던
해묵은 우듬지 한쪽에서
파랗게 새싹이 나기 시작했다

“신기하기도 해라”
썩어 문드러지고 갈라져
칙칙하게 검은 갈색을 띤
늙어빠진 색과 대비되는
연녹색의 싹이 경이롭다

그래 이렇게 돌아오는 걸
아니 온다 하고 떠났을지라도
기다리다 보면 새싹 되어
다시 돌아와 내 품이 안기겠거니

동구 밖 어귀의 망부석 되어도
올빼미 눈을 하고 기다려 보리라
우듬지에 새싹 돋듯
다시 돌아올 것만 같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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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황홀한 고독 속에

도지현

내 앞엔
검은 아가리를 쩍 벌린
동굴 하나가
축축하고 차가운 입김을 내뿜으며
점점 내 몸을 휘감고 있다

스르르 감아 당기는
차가운 뱀의 혀
내 의지가 아닌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누구도 없는 나 혼자만의 세계
어둠의 장막에 갇힌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럼에도 싫지 않은 건
은근히 즐기고 싶었던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 내재하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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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이 가을 그대 가슴에

도지현

가슴에 사랑이 물 드는 날
잎새는 붉게 옷 갈아입고
황홀한 정열의 춤 너울너울 춘다

알록달록 옷 입은 단풍들
마지막 정염의 불꽃 피우고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는데

무대 뒤로 사라질지라도
그 여운은 길게 남아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아직 붉다

낙조에 물든 하늘은 붉고
산야를 불태우던 단풍도 붉어
그리하여 가슴까지 붉은데

이 가을 그대 가슴에도
붉은 실로 알알이 수놓아
내 사랑 고이 새겨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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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내 인생에 가을 오면

도지현

청청하던 시절가고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니
삶의 나이테가 늘어난다

봄에 뿌린 씨앗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 가고
가을엔 결실을 걷어들이는데

그 동안 지은 농사가 어땠는지
내 인생의 가을엔
얼마만큼의 결실 걷을까

살면서 회한 남기지 말자
언제 어느 때 뒤돌아 봐도
궤적만큼은 빛나게 하자

풍요의 가을이니만큼
넉넉하고 여유로운 가슴으로
내 인생을 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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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석양에 하늘빛 물들거든

도지현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굽이굽이 사연도 많았지

꺾어질 수 없어
휘어지고
쓸개보다 더 쓴맛도 보았어

지난한 세월을
엎어지고 고꾸라지면서
발바닥 성할 날 없었지

인고의 세월 감내하고
숙명이거니 하며
묵묵히 순응하며 살은 세월

이제 석양빛 물든 시절
인생도 갈무리해야 겠지
차분하게 하나씩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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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2월에 꿈꾸는 사랑

도지현

하얗게 피어나는 기다림이 있다
천사의 미소 머금고
꿈 나래 펼치듯
아름다운 사랑이 오길 꿈꾼다

조그만 가슴에 품은 꽃씨 하나
하얀 그리움으로 피어나
애오라지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숙성 된 와인 맛 같은 사랑이고 싶은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과 대지에서
황홀하리 만치 아름다운
하얀색 주단을 깔아 놓은
순백의 영혼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다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굴레 속에
영원이라는 단어 아로새기고
가슴, 가슴마다 에는
순백의 순수한 사랑을 꽃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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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2월의 기도

도지현

하얗게 내린 눈 위로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
그 위로 또 눈이 쌓이더라도
다시 찍는 자국은
사랑의 흔적이게 하소서

차가운 바람
코를 베에 물고 가더라도
가슴은 봄 뜨락의
따사로운 햇볕이게 하소서

빈한한 가슴에
허기까지 겹쳤다 하더라도
신이시여
그들의 곳간은 풍요롭게 하소서

파리한 영혼 삭막하더라도
여름 숲 속의 윤기 나는 푸름
가을 들녘의 넉넉함이
가슴을 가득 채워
차가운 겨울밤 따스하게 지핀 온기
신이시여
모든 이들에게 밝음을 주는
별보다 찬란한 등불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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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멀어져 간 사랑

도지현

스멀거리는 가슴 안에
찬바람이 휙 하고 지나간다
폐부를 찌르는
고독의 향기가 오늘따라 독하다

무엇을 위해 살았고
무엇을 찾아 예까지 왔는지
지금까지 지어온 것은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 일뿐

사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텅 비어버린 뇌 속은
차가운 공명만 울릴 뿐
가슴까지 하얗게 비어버렸다

모든 것은 空이고 無인 것을
집착의 붉은 열정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고
지울 수 없는 점 하나에 솟는 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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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겨울을 닮은 사람

도지현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로
씩 하고 웃는 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난다

조금은 모자라게 보이는 사람
볼 때마다 마음이 싸하고
꼭 안아 주어야 할 것 같아
가슴을 아리게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 몸짓 하나하나에서
외로움의 늪을 허우적거리는
날개 잃은 새로 보여
애잔한 슬픔이 목구멍에서 울컥한다

허공을 더듬는 공허한 눈동자
투명하다 못해 맑은 크리스털
깜박거리면 그대로 녹아서
주르륵 눈물 되어 흘러내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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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겨울 거리에서

도지현

고독을 품은 하늘이 운다
차가운 기류가 가슴으로 스미면
또 다른 고독이 고개 짓하며
빌딩 숲 사이에 서 있다

윙윙 우는 전신주가 아프다
귀를 때리는 차가운 바람이 불면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고독한 에뜨랑제가 된다

바람이 쓸고 간 자리는 황량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졸고 있는 가로등에서
하루의 고된 삶이 물씬 풍기는데

이제 모든 것을 벗어버린
앙상하게 말라 스스로 지탱하기도
버거운 가로수는
긴 그림자 드리우며 가로에 눕는다.

진한 고통과 고독에 휩싸인 거리는
살려달라 아우성치지만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은
서로가 불신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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