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참 뜻을 깨우친 선승으로 속명은 이창림(李昌林),
1891년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서 태어나 1901년 13세 때
백담사에 출가하여 10여년간 만해 한용운을 모시며 수학하였다.
1919년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가 되었고, 1929
년 만공의 법을 이어받았다. 1950년 6.25 전쟁 때에는 북한산의 망월사를 떠나지 않았다.
만해를 면회 갔는데 만해가 이 솜옷의 출처를 물었다.
스님은 솔직하게 절의 땅을 팔아 마련했다고 하니
만해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절의 땅을 네 마음대로 팔아 옷을 장만해!
나는 너같은 놈을 제자로 둔 일없으니
다시는 스승이라 부르지 말라." 고 했다.
스님은 땅이야 절이 나중에 도로 사면 되지만
스승의 옥체는 상하면 회복되기 어려우니 그리하였다고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후 춘성은 스승이 누구냐고 물으면
"저에게는 은사가 안계십니다." 고 답했다고 한다.
제 10 화
스님이 입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후학이 물었다.
"스님께서 열반에 들어 다비를 하고 난 후,
스님의 사리가 안 나오면 신도들이 실망할 텐데요?"
그러자 스님이 큰소리로 말했다.
"야, 이 시발 놈의 자슥아! 내가 신도 위해 사냐?"
스님은 입적 후, 절대로 사리를 찾지 말고
비석과 부도도 세우지 말 것이며,
오직 수행에만 힘쓰라고 당부했다.
이토록 투철한 수행과 특이한 기행으로
한 평생을 살다 가신 스님을 보내는 날 밤,
후배 선승들은 다비식장에서 스님이 생전에 즐겨 부르시던
<나그네 설움> 을 부르며 춘성 스님을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