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사는 이야기

내 인생의 우선순위

수성구 2013. 10. 30. 07:08

 

    내 인생의 우선순위
    “엄마도 TV에 나왔으면 좋겠어.” 어느 날 아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아나운서다! TV에도 나온다.”라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친구들이 듣지 않는 아침 시간 라디오에만 나오니, 그게 아쉬웠나 봅니다.
    둘째를 낳고 나서 TV 프로그램은 안하고, 라디오 <황정민의 FM 대행진>을 
    진행한 지 3년이 지났을 무렵에 생긴 일입니다. 그동안 몸도 안 좋았지만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 들어오는 프로그램을 몇 번 고사하고 나니, 
    아예 일이 뜸해졌습니다.
    사실 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무언가 하나를 하고 있으면 그것이 매개체가 되어 다른 프로그램도 들어오지만, 
    아예 TV 프로그램을 하지 않고 있으면 금방 잊혀지기 마련인 게 방송국의 
    생리입니다. 또 일을 열심히 하려면 방송 시간에만 반짝 나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팀과 하나가 되어 캐릭터를 잡아야 하고, 같이 밥도 먹고 얘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프로그램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하려고 일부러 애를 쓴 건 아니었지만,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함께한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데 한몫을 해낸 적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다 옛날 얘기가 되었습니다. TV 프로그램은 고사하고, 개인적인 소망도 
    이뤄내지 못해 책을 쓰기로 결심하고는 한참을 한 줄도 쓰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첫째를 낳고 나서는 아이를 재워놓고 새벽까지 혼자 글을 쓰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금은 아이를 재우다가 제가 먼저 잠들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글을 써야겠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만 굴뚝같지, 몇 주가 지나도록 단 몇 시간도 집중할 틈을 
    찾지 못했습니다.
    자꾸 마음만 앞서게 되는 것 같아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은 없는지, 
    일주일간의 스케줄을 30분 단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회사 일과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등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엄마들에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늘 쌓여 있습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에너지도 모자라고, 앞으로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할까 봐 
    조금 울적했습니다. 언제나 분주하고, 피곤하고, 지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싶어서 한 번 우선순위를 꼽아 봤습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내게 제일 중요한지를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게는 하느님과의 시간이 우선순위에 잡혀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우선순위에 ‘잠깐 쉼’의 시간을 넣기로 했습니다. 의식적으로라도 
    이렇게 시간을 내지 않으면, 저는 매번 습관적으로 허덕이며 살아갈 것입니다. 
    바쁘게 지내지 않으면 어색하고 불안한 저의 일상 속에서 ‘잠깐 쉼’의 여백으로, 
    하던 일을 멈추어 보려고 합니다. 다음 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라도 주님과 함께 
    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황정민 아녜스 /  K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