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가족
세상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은 각양각색입니다.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가족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하느님께서는 솜씨가 얼마나 좋으신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으실 때마다
갖은 정성을 기울이신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나와 다른 이웃이라서 남들과 다른 나이기에
우리는 모두 그분께 유일한
바로 그 ‘작품’이란 걸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오늘 바오로 사도가 이르는 말씀을 들으며
교회인 우리들에게 맡겨진 은사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언자로써
봉사자로써
교사로써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모든 분들의 수고가
교회를 튼튼히 세우는 반석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때문에 거짓 없는 사랑으로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라는 말씀에 주목하게 됩니다.
서로 깊이 아끼는 마음이악을 혐오하는 자세이며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는 모습이
선을 꼭 붙드는 삶이라 짚어 봅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실천할 때
교회를 위한 열성이 줄지 않고
우리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를 수 있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하느님 나라의 큰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은
오직 “어떻게 해서라도”
그분의 집을 채우시려는 하느님 뜻의 자비하심 덕분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을의 한길을 지나치다 우연히 불려온 사람이거나
가난해서 그분의 눈에 띈 사람입니다.
거의 모두 홀로 세상을 살아낼 힘이 없어서
그분의 부르심에 응할 생각을 했을 터이고
도무지 헤쳐 나갈 방법도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고 실감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불림을 받은 그 순간 세상의 어느 누구 앞에서도
으스댈 수 없는 처지로 내려앉게 된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한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 때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의무만 주어져
어떤 비천한 사람보다도 낮아지게 된다는 걸 아시나요?
궁핍한 사람이라서 적당히 하대하는 일도
환난을 당한 사람이라서 피하려 드는 일도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기뻐하는 일에 시샘을 하거나 우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면
모두가 자신의 처지를 잊고 으스대는 꼴이라는 뜻입니다.
불림을 받는 일은 은총입니다.
보이지 않는 일을 희망하는 믿음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박해하는 자들까지도 도리어 축복하는
굉장한 마음까지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서둘러 사랑하게 되고
나처럼 살지 않는 그 처지를 먼저 보듬어 주는
대단한 사람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채우기 위해서
지금도 ‘큰 잔치’에 초대할 이를 찾으시고 부르시는
그분께서는 오늘도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날 함께 어울릴 천국의 가족을 찾고 계십니까?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십니까?
세상의 수없이 많은 사람 중에
몇 사람을 천국가족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 장재봉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