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영적 실망(7)
(고독, 메마름, desolation)
이냐시오 성인은
영적 실망에 거슬러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므로,
의도적으로 기도생활에 더욱 시간을 할애하고
더 많은 영성생활을 하도록 강조한다.[319]
악한 영은 우리가 유혹에 저항하여
정반대의 행동과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
기력을 잃고 돌아가지만,
반대로 우리가 겁을 먹고 유혹에 기가 꺾이면
더욱 기세를 내어
우리에게 달려들기 때문이다.[325]
악한 영은 우리가 영적 실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끝내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을
가장 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큰 죄나 좌절, 메마름 중에 있어도
그분의 자비심을 믿고 용기 내어 일어나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실망과 좌절은 결국
우리를 더욱 헤어나지 못하게 할 뿐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때론
광야의 고독과 시련으로 초대되어 지곤 한다.
그곳은 우리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순간이다.
그 침묵은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의해 인도되신 광야에서,
그리고 겟세마니 동산과 십자가 위에서
경험하신 침묵이다.
성모님 역시 가브리엘 천사가 떠난 후에,
혼자 남아 자신의 다가올 현실을 깨닫고는
마치 광야에 홀로 있는 듯 한 두려움을
느끼셨을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
“예”라고 말씀하셨던 순간은
바로 영적 위로의 시간이었다.
그런 후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 곁을 “떠나갔다.”(루카 1:38)
성모님은 아기를 가진 후에
계속해서 아버지의 원망과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요셉도 파혼하려 하고,
“과연 이 아이를 어떻게 혼자 키워야 하는가!”
고민하셨을 것이다.
막상 “예”라고 답은 했지만
현실은 쉽지가 않았다.
성모님께는 위로가 필요했고,
그나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셨다.
그리고 엘리사벳을 만나는 순간,
성모님께서는 비로소 자신의 소명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게 된다.
바로 영적 실망(고독, 메마름, desolation) 중에
자신의 소명을 “예”라고 확인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오 3:17)
라는 말씀을 들으시며, 큰 영적 위로를 받으신다.
그리고는 바로 광야에 인도되어
영적 실망(고독, 메마름, desolation)의 시간을 보내시면서,
세상에서의 자신의 소명을 참으로 받아들이시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겟세마니 언덕에서,
십자가 위에서,
이처럼 예수께서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이시고 이루신 때는
영적 실망(고독, 메마름, desolation) 중이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우리의 소명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때는
영적 위안 중이 아니라
영적 실망(고독, 메마름, desolation) 중이다.
그러기에 영적 실망(고독, 메마름, desolation)이
우리 일상에서 소중한 것이다.
영적 위안 중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우리는 영적 실망(고독, 메마름, desolation) 중에
하느님께 응답 드리며 우
리의 소명(그분의 사랑)을 완수하는 것이다.
영적 실망(고독, 메마름, desolation)은
성모님과 예수님께서도 경험하셨던
우리 인생의 일상적인 것이다.
- 손우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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