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마음에 바르는 약 |―········

수성구 2016. 7. 26. 03:44


마음에 바르는 약 |―········감동ノ눈물감동글






      마음에 바르는 약

      남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마세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몰라요.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무조건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버리세요.
      그건 이해가 아니라 강요랍니다.

      힘들 때 누군가
      위로해 줄 것을 바라지만 말고
      혼자서 이겨내 볼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당신의 고민보다
      더 큰 고민을 안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진심을 장난으로 말하지 마세요.
      그럴수록 당신의 진심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돼 있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사랑하세요.
      머리로 잰 마음은 줄자처럼
      다시 되감겨지게 마련이거든요.

      당신이 외롭다고 느낄 때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보세요.
      이 세상엔 언제나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될 거예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단어 몇 글자로 이루어진 말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당신의 삶을 바꿀지도 모르니까요.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나오는 음악 : 아름다운것들 - 양희은


 





      가족(FAMILY)의 어원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현자를 찾아가서 남편과 아들의
      사이를 좋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현자는 아들을 만나 아버지에게 가장 불만스러운 점을
      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머리를 쥐어박으실 때가 가장 싫어요.
      저를 어린아이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현자는 아버지를 찾아가 아들에게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일을 물었습니다.
      “표현하기가 영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아들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곤 하죠.”

      현자는 두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며, 서로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해’라는
      안경을 끼는 일입니다."

      “가족(family)”이란 어원을 아십니까?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Father, Mother. I love you.)” 첫 글자들을 합성한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말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따스한 단어입니다.






      펠리컨의 새끼 사랑

      부리 아래에 주머니가 달려 있는 펠리컨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주머니는 펠리컨의 위가 담을 수 있는 양의
      무려 3배나 더 담을 수 있습니다.
      펠리컨의 주머니는 먹이를 잡을 때 사용할 뿐만 아니라,
      새끼들에게 먹이를 줄 때도 사용합니다.
      북극 지방에 햇빛이 잠깐 비추는 몇 개월 동안 먹이를
      이 주머니에 저장한 후,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추운 겨울에는
      새끼들에게 저장한 먹이를 나누어주어 겨울을 나게 합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나기 전에 먹이가 떨어지면 펠리컨은
      제 가슴살을 찢어 새끼들에게 먹입니다.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새끼에게는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그 피를 입에 넣어줍니다.
      어미 펠리컨은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 중 한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
      곧 답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언제라도 선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족과 언제라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나의 아픔을 낱낱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출처 :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중에서

      영상 제작 : 동제






      가슴 뭉클한 삶의 이야기

      지퍼가 고장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가을에 입던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 날밤 나는 졸음을 깨우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차디찬 도시락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엄마∼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사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 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께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 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 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 국밥 집에서
      우리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복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이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못한 자식을 둔 아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 일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 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 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 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워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 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 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 위의 글은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 글입니다.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내의 굴지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으며 어머니와 형을 미국에서 모시고
      같이 공부하면서 보살핀다고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