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2015년 2월 22일 사순 제1주일

수성구 2015. 2. 23. 01:53

 

 
2015년 2월 22일 사순 제1주일
 

제1독서 창세 9,8-15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1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14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제2독서 1베드 3,18-22

사랑하는 여러분, 18 그리스도께서는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9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르 1,12-15

그때에 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세례를 받자마자 곧바로 신앙생활을 그만두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6개월 이상의 예비자 교리까지도 마쳤는데, 또한 그 동안 계속해서 미사에 참석하는 노력을 보이면서 세례를 받고자 하는 원의가 그렇게 강했는데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접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빠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보다 가장 큰 이유는 세례 전이나 세례 후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주님 존재에 대한 확실성도 없기에 약간의 변화라도 느낀다면 열심히 다니겠지만, 열심히 다니나 그렇지 않으나 다른 것을 전혀 느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가톨릭 전례의 엄숙함이 하나의 구속으로 다가오고, 일주일에 한 번 미사 나가는 그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연히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래전에 세례 받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왜 지금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열심히 다니려고 했는데, 세례를 받자마자 안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몰려왔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잠시 쉬겠다는 마음으로 성당을 안 다니자 그제야 좋지 않은 일이 멈춰서 그 후로는 겁이 나서 성당에 못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

“세례 받으면 은총을 많이 받는다면서요? 저는 벌만 받아서 못 나가겠어요.”

글쎄요. 하느님의 뜻을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잘못 생각하는 하나가 있습니다. 세례 받으면 분명히 은총을 받지만, 인간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즉,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 또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등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들을 반드시 은총의 효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느님의 은총이 아닌 세상의 성공만을 원하는 단편적인 면만을 보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 곧바로 사십 일 동안 홀로 단식하셨습니다. 사실 세례라는 것은 성령을 받아 영적으로 새로 나는 것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이제는 광야로 나가실 것이 아니라, 곧바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나 광장으로 가서 당신의 일인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정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은 뒤에 스스로 광야로 선택해서 가셨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모든 것이 다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도 늘 깨어 단식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례를 받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닙니다. 또한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은총으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세례를 받으면 더욱 더 성령의 열매를 자신 안에서 맺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신앙생활에 충실해야 함을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을 따를 때,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 나라의 가치로 중요하고 커다란 은총과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세상의 근본이며 세상의 동력이다. 시간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 못한다. 마음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김훈).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유혹을 당한 유혹산입니다.


좋아하는 사탕(박광수,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중에서)

깡통 캔디 안에서는 보라색의 포도 맛, 붉은색의 딸기 맛, 노란색의 바나나 맛, 하얀색의 사과 맛 등의 사탕들이 섞여서 들어 있습니다.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은 하얀색의 사과 맛 사탕입니다.

전 늘 하얀색의 사과 맛 사탕만을 먹고 싶지만, 깡통을 흔들어서 나오는 사탕은 번번이 다른 색 사탕입니다. 생각해보니, 깡통 캔디는 우리네 인생과 참 닮아 있습니다. 수많은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살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색의 사탕이 나왔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낙담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 손에 들려진 사탕의 맛을 음미할 것입니다. 그렇게 느긋하게 기다리다보면 제가 원하는 하얀색 사과 맛 사탕도 언젠가는 나올 것입니다. 제 인생도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며 살아갈 겁니다.

안 좋은 일이 내게 다가왔다고 낙담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안 좋다는 것은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기도 하지요. 희망을 가지면서 살아간다면 분명 내 삶 안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깡통캔디.





 

'백합 > 묵상글 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의 지식은 신적인 침묵에 있다.  (0) 2015.02.24
복음을 말할 것인가 율법을 말할 것인가?   (0) 2015.02.23
나의 유혹은?  (0) 2015.02.22
어느 수녀의 이야기  (0) 2015.02.20
가정의 소중함   (0) 2015.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