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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수성구 2014. 10. 9. 03:28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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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엔 정신적 기도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자주 만나서 친하게 이야기하는 우정의 교환입니다.’ - 천주자비의 글 8, 5 -

 

‘여러분이 그분을 줄곧 곁에 모시는 한, 그리고 그분이 오직 사랑으로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당신의 뜻을 채우려고 애쓰는 여러분을 부시는 한, 여러분이 그분을 내칠 수 없고, 그분 또한 여러분을 버리실 리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서든지 그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 완덕의 길 26, 1 -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께서는 400년 전에 살다 가셨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계십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까만 생각하신 성녀께서는 특히 깊은 묵상기도에 대해서 많은 흔적과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하느님만 골똘하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성을 가지고 숱한 추리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거창하고 아리송한 명상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 완덕의 길 26, 3 -

 

성녀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자신에게 일어나신 내면의 이야기만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안내하고 가르쳐주는 기도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마음이 기쁠 때는 부활하신 그분을 우러러 보십시오. 무덤을 뛰쳐나오신 그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기쁨이 벅차올 것입니다. 그 휘황찬란하심, 그 아름다우심! 그 엄위하심! 그 영광스러운 승리! 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고생스럽고 슬프거든 게쎄마니 동산의 길로 눈을 돌려보십시오. 인내 차제이신 분이심에도 괴로움을 하소연하셨으니, 그 영혼이 당하시는 고통이 얼마나 심하셨겠습니까? 여러분에 대한 그 막중한 사랑 때문에 형틀기둥에 묶이시어 갖은 고통을 겪으시며, 갈기갈기 찢겨나간 그 살점들을 보십시오. 모든 닦달질을 받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신과 저버림을 당하셔도 누구 하나 편들어 주는 이 없이 추위와 떨며 괴로움 속에 던져지신 그 고통, 그 하나하나가 여러분의 위안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하시는 그 모습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그분을 숨 쉴 겨를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름다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눈물이 흥건한 눈으로 여러분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로하시고자 당신의 고통을 잊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위로해 드리고자 함께 가고 머리를 치켜 그분을 뵈려하기 때ㅔ문입니다. - 완덕의 길 26,4,5 -

 

하느님께 기도하기 위해서는 꼭 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항상 거기에 계시기에 우리는 그분과의 친밀한 나눔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현존에 머물러야 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당신의 책에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데에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데에 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일보다 더 큰 일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기도에 집중하려하면 분심이 든다구요.

분심을 일어나지 않게 할 방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분심이 와도 분심은 분심 그 차제일 뿐이며, 내가 동의하고 따라다니지 않는 한 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허상일 뿐입니다. 분심이 일어나면 바로 하느님의 현존을 생각하고 그분의 사랑에 잠기십시오. 우리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영성을 압니다. 마르타의 영성도 중요하지만 마리아의 영성은 더 중요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루카 10, 41-42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며 기도에 잠심하는 것! 바라봄 그 자체도 늘 감사와 찬미와 흠숭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는데 들이는 시간, 한 시간이나 혹은 삼십분이 그런 시간들은 주님과 함께 오직 주님과 함께 주님의 현존에 있다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기도가 생활화 된다면 장소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평신도의 기도는 봉쇄수도원에서 올리는 수도자의 기도나 성직자의 기도시간과는 분명 틀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친밀함을 나누는 시간, 그분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시간은 우리가 아무리 바쁘다 해도 하느님께 시간을 내어드린 다면 그런 것은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만약 순명이 부엌으로 인도한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솥 가운데에도 계시니까요.’

- 창립사 5, 8 -

 

교회에서 순명은 게쎄마니 동산에서의 우리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루카 22, 42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또한 성모님에게서 나옵니다.

(루카 1, 38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2014년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사랑의 향기마을

김진학 안드레아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