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수성구 2014. 9. 25. 08:27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우리는 지난 8월16일 시복된 124위 복자(福者) 탄생과 더불어 1984년 시성된 103위 성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 덕분에 자랑스럽고 행복한 신앙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인들의 당시 신분계층을 보면 농민(農民), 공인(工人), 역관(譯官), 군인(軍人), 관리(管理), 무직(無職)의 여성(女性), 성직자(聖職者), 회장(會長) 등 다양합니다. 그 중에 역관으로 성직자 영입을 위해 힘쓰던 유진길의 아들이었던 유대철 베드로(1827~1839)는 한국 순교 성인 103위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소년(당시 13세)입니다. 박해가 일어나자 그의 마음속에는 순교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일어나 스스로 관가에 찾아 갔다고 합니다. 좀 더 긴 인생을 살 수도 있었는데 나머지 시간을 하느님께 맡겨버립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대건 신부님(1821~1846)도 20대 나이에 신부가 되어 1년 남짓 사제 생활 후 순교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또 다른 모든 순교자분들께서도 결국 이 세상의 시간을 기꺼이 자신을 위해 남겨 두지 않고 내어 놓으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나머지 인생과 더 누릴 수 있는 자신의 ‘시간’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시간을 봉헌하는 것이 순교의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시간이 돈이다.’라고 할 정도로 시간에 아주 인색합니다. 누군가에게 시간 좀 내어 달라고 하는 것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요구가 되었습니다. 입에 붙어있는 말이 ‘바쁘다’, ‘시간이 없다’ 등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시간 없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바쁜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중요 인사가 된 착각조차 즐거워(?) 하기도 합니다. 자기만을 위한 시간 쓰기에 흠씬 빠져서 삽니다. 나의 하루 24시간은 어떻게 분배되는지 한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분위기 좋은 음식점이 있다고 하면 기가 막히게 찾아갑니다. 멀어도 갑니다. 산 넘고 물 건너 요리조리 골목을 헤매서라도 찾아갑니다. 그러나 성당이 조금 외진 곳에 있고, 주차가 좀 힘들고, 걷는 시간이 걸린다면 너무 일찍 성당 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술 한 잔 하는 시간은 두세 시간이 가볍게 흘러도 아깝지 않고, 성경 공부를 생각하면 시간도 없고 허리도 아픈 것 같습니다. 내가 아쉬울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누군가 어려움을 말해올 때는 왜 그리 바쁠 것 같은 일들이 머릿속 가득히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결론은 ‘다음에 뵙죠!….’ 하고 도망치듯 사리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내어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인색함’은 우리 삶을 서로 삭막하게 만들었습니다. 타인을 위해, 하느님을 위해, 시간을 조금씩 더 내어놓도록 합시다. 우리도 순교자의 후예답게 ‘시간 순교’를 합시다. 그래서 우리 서로 삭막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서울대교구 강귀석 아우구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