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지켜야할도리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우리가 도리를 다 지키면서 살아가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도리적인 삶은 최소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겠다는 의지와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고 살려고 노력을 할 때 자신의
변화적인 삶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우리 삶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인간미까지 버리는 사람들로 인하여
선의의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가끔 길거리에서 뭇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방신을 당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가련한 생각도 듭니다.
지금의 사회는 윤리가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인간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패륜적인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남을 탓을 하지만 부정한 일을 보고서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불구경하는 자세로 인해 더욱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나 하나쯤은, 이 정도는 하고 쉽게 넘어가는 우리들의
생활상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삶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달을 때 아름다워질 수 있고
윤리를 지키고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이성이 누구를 통해서 얻게 되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왜 인간에게 일반 피조물과 달리 특별한
특권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분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도리적인 삶은 이루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질서를 세우시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솔선수범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대 인간이 이를 망각하고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면 모든 것은 파괴되는 온상을 빗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하느님은 인간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며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시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가 거룩해지고
성화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성과를 이루더라도
결국엔 쭉정이와 같은 빈껍데기 삶에 불과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당신이 하시고자 한다면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이
세상의 비리와 불행도 감싸 안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삶속에서도 우리가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
갈 때, 우리 자신이 거룩해지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힘이 생겨나는 것은 왜 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