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신앙의 길잡이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 1

수성구 2022. 5. 4. 00:58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 1

*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과 거룩한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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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는 부모에 대한 아들의 신뢰와 같아야 한다.

쓸데없는 걱정과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영혼에 대한 사정이면 무엇이든지 숨기지 말고

모든 것을 그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마치 아이들이 저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솔직히 말해버리듯이....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죄와 결점과 나쁜 습관과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과

과거와 현재의 양심에 가책되는 일 등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성 이냐시오가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마귀는 경솔한 영혼에 대해 마치 처녀를 유혹하려는

방탕한 청년과 같은 태도를 갖는다고 했다.

이런 고약한 청년은 자기가 말한 것이나 취한 행동을 처녀가 부모에게 말하는 것을 무서워한다.

 

마찬가지로 마귀란 놈도 고해자가 고해 사제에게 자신의 올가미와 나쁜 꾐을 고하는 것을 무서워한다.

사실 마귀가 여기서 무서워할 이유가 있다.

고해 때 그것을 다 털어놓으면 그놈이 꾀는 올가미는 쓸데없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귀는 사람에게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심을 적게 가지게 하든지, 아주 가지지 못하도록

그 영혼 속에 고해 사제를 의심하고, 무서워하고, 믿지 않는 생각을 집어넣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용기를 내서 우리 영혼의 아버지인 고해 사제에게 이 고약한 유감까지 다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저것 다 말하여 고해 사제를 귀찮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영혼에 대한 사정이면 어떤 것이든지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에는 제한이 없다.

 

다른 사람이 욕을 하든지, 고해 사제에 대한 존경에 일그러짐이 있다 하더라도 관계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자기의 영혼 사정을 바로 말하기를 부끄러워하고 무서워해서

고해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나 드물게 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불행을 부른다.

그런 사람은 마귀의 유감에 지는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자기 영혼 사정의 전부를 알아내어 고해 사제에게 모두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요, 공연한 괴로움이다.

그런 걱정은 도리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생각하고 설명했으면 그만이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길 일이다.


그리고 우리 영혼의 지도자요 아버지인 고해 사제도 우리를 도와줄 것이요,

우리가 설명하려 해도 잘 안되는 것을 알아서 스스로 이해하기로 힘을 쓰며,

우리에게 알맞게 물어보아서라도 우리가 고해를 잘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고해 사제의 질문을 귀찮게 여기는 사람은 마치 자기 병을 옳게 고쳐주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의사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이 제 병을 고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말할 점은 고해할 때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 것이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는 방법을 어렵게 한다든지, 솔직히 말하기에 너무 덤빈다든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않나 하고 무서워서 이랬다 저랬다 한다든지, 해석하기에 애매하고 어려운 말을 한다든지,

앞서 말한 것을 부인하는 것처럼 말한다든지 하여 고해 사제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고해할 때 자기 사정을 분명히 또한 솔직하게 말하게 되면

자신에게 불명예스럽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는 정직함과 단순함이 고해 사제로 하여금

그 고해자에 대해 마음을 기울이게 한다.

도리어 둘러서 말하거나 거짓을 말하면 나쁜 결과가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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