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언제 지어졌나
3월 둘째주 사순 제2주일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28-36)
내 집은 언제 지어졌나
(윤행도 신부. 마산교구 경화동성당 주임)
지난해 말 50년 지기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3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정년퇴직 했다.
나는 직장을 몇 년 다니다가 신학교에 들어가 99년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힌 직장을 꾸준히 다닌 그 친구가 승진을 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등
변화를 거치는 동안 나는 소임지가 바뀌고 나이만 들어갔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신부이다.
주교로 승품되는 몇몇 분을 제외하면 신부들은 일생을 신부로 살아간다.
가끔 들어오는 미사예물이나 생활비가 오르는 것 외에는 신상의 변화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자칫 삶이 정형화되고 자신만의 틀에 갇히기 십상이다.
사제서품 후 몇 년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틀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에 도달했기에 그곳에 `집`을 짓는다.
내 `집`은 언제 지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누구도 쉽게 고치거나 허물수 없을 정도로
매우 야무지고 단단하게 지어졌다.
그러나 교회는 이 세상의 나그네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머무를 `집`을 짓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거쳐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어느 한 곳에 멈추어 서는 것.
나아가기를 그만두는 것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성령이 이끄는 대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야 그곳에 집을 짓고 살게 되면 더 이상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예수님이 수난과 죽임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
그보다 더 좋을수는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가셔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약 20년 전 동료 신부님의 소개로 시작한 향심기도 수련을 지금까지 매일 한 시간 반씩 하고 있다.
향심기도의 지향은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심에 `동의`하는 것인데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오래전에 지어진
나의 `집`이 조금씩 고쳐지고 다듬어지고 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소양이나 인품도 부족한 내가 주교로 승품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 나라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
지어진 `집`을 허물어 버리기에는 용기도 없고 힘도 없지만
언제든지 `집`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겠다.
(가톨릭다이제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