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수성구 2022. 3. 14. 01:29

주님의 거룩한 변모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루카9,29)

 

비록 외형적으로는 불완전한 육신을

 입으셨으나 내면적으로는

 전혀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때 그 죄없는 내면의 거룩한 본질적 

영광이 외부로까지 드러났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야말로 전혀 

죄의 오염됨이 없는

 거룩한 신적 본질을 지니신 분이시며,

모든 이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야 되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그들 앞에서' 변하셨다는 것은 

이 사건이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배려였음을 알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가 메시아이심을 확신하도록,

또한 확신 가운데 제자의 길을 걷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이들은 후에 자신이 이때 보았던 

예수님의 영광이 강생(육화; Incarnatio)

이전에 그가 가지셨던 신적 영광임을

 알게 되었다.

(요한 1,14; 17,5; 필리2,6-7)

 

그 다음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영광의 광채를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묘사하였다.

즉 태양(hellios; 헬리오스)과도 같은

 강렬한 빛이 얼굴에서 빛나며,

몸 전체에서 나옴으로 그 옷을 투과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거룩한 신성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광채는 모세의 얼굴에서

 빛났던 광채와 비교할 때

그 정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탈출34,29-35)

 

모세는 얼굴에서 광채가 났었으나,

 이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가까이 

뵘으로써 얼굴에 투영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얼굴을 수건으로 

덮었을 때 그 빛은 가리워졌다.

 

그러나 예수님의 광채는 

예수님의 몸 자체에서 빛났던 영광의 

광채로서 두터운 겉옷을 투과할 뿐 

아니라 투과한 그 빛이 겉옷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새하얗게

 보이게 할 정도로 강렬하였다.

 

그런데, 루카 복음의 병행 구절은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된 시기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였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루카9,29). 

 

루카가 특별히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 것은, 마태오나 마르코가 

타볼산에서 신적인 모습을 나타내신

구체적인 이유에 초점을 맞춘 것에 비해, 

루카는 예수님께서 완전한 신이시자 

사람으로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되심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심을 드러내시는 동시에,

우리 자신도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길 원한다면, 기도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일치하고

 친교를 나누며,초자연적 사랑과 은총과 

빛을 받아 하느님처럼 

거룩하게 되는 길이 기도뿐이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없는 상태에서 

기도할 때,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시요 전구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성부 하느님께 전달되고,

동시에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시고 목적이신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땅에서 성부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방법이 무엇인가? 

기도밖에 더 있는가!

요한 복음 4장 24절에는 영이신 

하느님을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오상의 성 비오 사제는

 억지로라도, 마지못해서라도, 

의지적으로 기도하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 땅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한 방법이며,

대죄가 없는 은총 지위에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초자연적 

사랑(은총)을 받지 못하면,

초성생활과 구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대도 현대의 많은 크리스챤들은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도 보지 않으며,

겨우 주일 미사만 간신히 

형식적으로 지킨다.

 

이 시대는 너무나 초자연과 영적인 

세계와 차원을 고의적으로 부인하고,

심판과 영원한 생명(복락)과 지옥벌을

 믿지 않으며, 언젠가 없어질 현세와 

육의 사정에만 매몰되어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에, 하느님께서는 

기도를 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많이 바치시길 원하신다.

 

 

구원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첫째로 죄를 짓지 말고,

둘째로 반드시 기도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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