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영적 작업실

수성구 2021. 11. 24. 04:14

영적 작업실

지금 우리 가족은 한국의 수도 한복판인 대흥동에 살고 있다.

여기 도착하고 나서 처음 맞은 `따귀`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짐을 풀자마자 나는 스승님을 만나러 달려갔었다.

함께 오랜 시간 걸으면서 나는 그간 겪은 어려움을 털어놓으려고 했다.

한데 그분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투로 근엄하게 말씀하시는 것였다.

 

 

알렉상드르. 말은 자네를 지치게 만드네.

침묵을 유지 하게. 절실할 때만 그걸 깨트리는 거야.

어떻게든 위로 좀 받아 볼까하고 9천 킬로미터를 날아왔건만...

때를 닦아내는 작업은 그렇게 시작 되었고.

진정한 위로란 안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매주 열세 시간씩 명상을 시작했고.

월요일마다 성체조배를 하면서 그 신비를 일상 속 하느님의 생생한 현시로 받아들였다.

선은 나에게 어떤 몸짓도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일체가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외 시간은 나도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글을 쓰고 좌선을 하고. 또 항상 기도한다.

 

 

복음은 내게 확실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진채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쓸 때면 왜 자꾸 `나라는 존재`를 들먹이게 되는 걸까?

이런 고백의 형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글이 나라는 존재로 채워진다.

사실 나는 완전히 의기소침할 깨가 아니면

언제나 영혼의 고통과 장애라는 조건을 일종의 소명이랄까

세상을 체험하는 하나의 불가피하고 혹독한 방편으로 간주해왔다.

 

 

거칠게 표현하면. 나는 일종의 모르모트인 셈이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결코 혐오스럽지 않은.

수행과 고행. 심오한 발전이 아주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적 작업실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