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끝
세속의 달력은 한장 더 남아 있지만,
교회의 달력은
이번 주로 한 해를 마감하면서
다음 주부터 새로운 해를 대림절로
시작한다.
지금이 위령의 달이고,
한해 동안 받은 주님 사랑과 은혜에
대해 모든 영광을 만왕의 왕,
우주의 왕이신 그리스도님께 돌려드리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보내서 그런지
몰라도, 이제 내 생애의
'처음과 끝'을 묵상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에서 드러나듯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생애도
그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밝혀진다.
그래서 상해 천주교 요리 문답책의
일번 문항은
'사람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느뇨?'이고,
'천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태어났느리라'가
그 해답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사실이 어디 있는가?
사람은 자신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과
목적을 알아야만 어떻게 살아야
구원을 받는 지가 나오지 않는가!
자신의 존재와 생명의 근거와 목적을
아는 것이 첫번째 구원이요,
천주를 잘 알고 잘 공경하는 법을
말씀과 계명을 통해 배우고 깨달아
그분이 불러 주시는 날까지 구원과
성화와 완덕의 길을
구체적으로 사는 것이
두번째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이리라.
이 세상에는 인간적으로,
세속적으로 참 잘난 사람들이 많다.
돈이나 물질, 권력, 외모에서도 그렇고,
그리고 지식과 재능에서도 너무나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에게 그 모든 것을
주시고, 무엇보다도 존재와 생명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모른다면,
그들은 첫번째 구원의 관문에서
실격자요, 불합격자가 되어
잘못된 삶을 산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예수님의 강생(육화)과 공생활, 수난과
고통의 여정을 바라볼 때
제대로 그 의미를 알 수 있듯이,
우리네 삶도 지금 여기서,
미리 보고 묵상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출생과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을 반성할 줄 알아야만,
앞으로의 남은 삶의 여정이 제대로
정립될 수가 있게 된다.
나의 성소(聖召)와 소명, 사명이
주님 안에서 교회안에서
그리고 이 사회 안에서 어떤
성령의 열매와 결실을 맺고 있는지,
어떤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주님 대전에 인정받는 삶이 되어
천국에 보화로서 쌓이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11월 위령성월 늦가을과 초겨울을
보내면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세찬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뿌려 놓은
'사언행위'(思言行爲)를 묵상하게 된다.
'어디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을까?'
어떤 분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글을 보내왔다.
"잘 닦인 길만 바라보고 가지 마라.
새로운 길을 걸을 때, 사람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눈 앞에 숲이 있다.
그곳에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대를 기쁘게 한다."
이 글을 받아 보면서
나의 본성과 반대되는 길,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과 일들을
묵상하려니 다음의 복음 구절이
떠오른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마태7,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