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우리에게 주님이 오십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이 오십니다.
(홍성남 신부의 나로 사는 걸 깜박 했어요 중에서)
우리는 목자라는 말을 들으면 목가적인 풍경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목자들이 행복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는 이 목자들을 아주 짧은 말로 표현합니다.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사람들이라고 말이지요.
이 말은 목자들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었고.
일 때문에 늘 경계심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말해줍니다.
사실 당시의 목자들은 지배층에 착취당하는 피해자이면서 한편으로는 가해자이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땅에 몰래 들어가서 자기 양 떼를 먹이기도 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또한 들에 살다보니 성격도 거친 편이어서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지는 않았씁니다.
그런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목자들을 위하여.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메시아가 태어나셨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지요.
어쩌면 목자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밤에도 양 떼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목자들처럼
우리도 자신이 가진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까 전전긍긍합니다.
또한 목자들처럼 일상사에서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살지요.
어떤 희망도 목표도 없이 그냥 눈이 떠지면 살고 눈이 감기면 자는 일상사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자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하지요.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느님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께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도 젊은 시절 방황하면서 제 자신을 천덕꾸러기로 여긴 적이 있습니다.
가진 것도 없는 데.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푸념하고 살았지요.
그러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새롭게 훈련받으면서 하느님의 종으로서
저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하느님의 관대함 덕분에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분이십니다.
참 고마운 분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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