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마음을 본다
"주님은 마음을 본다." (1사무16,7)
하느님의 판단 기준은 인간의 외적인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하느님의 사람을
뽑는 데에 대한 사무엘 예언자의
잘못된 판단을 지적하시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사람은 '외모의 아름다움'을
보고 판단한다는 의미이며,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쉽게 판단하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실상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외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어도
하느님께 불순종함으로써
버림을 받은 사울을 보았을 때에
우리는 그렇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하느님의 판단 기준은 바로 '마음'을
뜻하는 '레바브'(lebab)에 있다.
개신교에서는 '중심'(中心)으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원래 '심장'을 뜻한다.
그러나 비유적으로는 육체적인 것과
구별되는 인간의 내면적이고
비물질적인 요소를 총칭한다.
즉 한 사람의 전인격을 뜻한다.
하느님께서는 겉사람이 아니라
보다 중요한 속사람, 즉
전인격적인 측면을 살피신다는 뜻이다.
마음은 인간을 대표할 뿐 아니라
인간 행위의 원천이기 때문이다(창세20,5).
사울이 하느님께 배척받았던 것도
그 마음이 인본주의적인 생각과 교만으로
가득차서 그 행동이 하느님께
불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새로운 임금에게 기름부음의 의식을
행함에 있어 그 대상의 마음이
하느님 마음에 일치하는 자인지를
반드시 살펴보는 것이다.
다윗은 형들이 돌보지 않겠다고
팽개친 아버지의 양떼를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히 돌보는 성실함을 보여
하느님 마음에 먼저 들었던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의 극을 달리는 이 시대에
하느님 뜻에 의합하여 내실과 내면을 돌보며
영혼과 심령을 닦고 살찌우는 사람들은
과연 몇명이나 될런지 궁금하다.
사실 진흙으로 빚어진
우리의 외모는 2,30대 반짝이다가
40대이면 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50대는 지력과 지식의 평준화,
60대는 권력과 명성의 평준화,
70대는 체력의 평준화,
80대는 생사(生死)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면서 죽음 앞에,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하느님 대전에
항복하게 된다.
이때 무엇이 남는가?
무엇이 영원한 가치를 지니며,
하느님께서 인정해주시고 소중하게
여겨 주시며 칭찬해 주시는 것일까?
이것을 한 나라의 임금을
기름부어 뽑으시는 사건 속의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깊이 묵상할 때
우리도 하느님께서 가정이나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어떻게 해야
영향력을 끼치는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자각과
영성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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