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내가 가장 겸손했던 때는?

수성구 2021. 10. 15. 03:47

내가 가장 겸손했던 때는?

10월 셋째주 연중 제29주일

너희 가운데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르 10.35-45)

 

내가 가장 겸손했던 때는?

(강태현 신부. 의정부교구 일산성당 부주임)

 

15년 전. 주일학교 교사 시절 내가 다니던 본당은 새로 지어진 작은 성당이었다.

신설이다 보니 대부분 주일학교 교사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우리가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지구 교사 모임이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다른 본당 교사가 물었다.

너희 캠프 준비는 잘 되어가? 나는 무슨 영문이냐는 듯 되물었다. 무슨 캠프?

나의 한마디에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 달 후에 캠프가 시작되는데 다른 성당은 이미 3~4개월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교사를 시작한 나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본당으로 돌아와 신부님께 말씀드렸더니 잠시 고민하시다 `그러네. 캠프를 가야겠네.

지금이라도 준비해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는데

다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어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맨 먼저 지구 내 경험 많은 교사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캠프를 준비할 때 신경 써야 할 여러 가지를 배웠다.

캠프 첫째 날 밤에 한데 모여 참회 예절을 하고 각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때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고해성사하고 나오는 중고등학생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며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차분하게 기도에 열중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는 이 시간을

함께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동안 주일학교 교사. 신학생. 또 사제로 캠프와 피정을 다니다보니

경험이 쌓여 차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능력으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잘 몰랐던 때가 있었다.

경험도 지식도 참 적었떤 그때가 가장 겸손했다.

지금 이 시간 교리교사 시절이 기억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완벽하게 준비된 곳보다.

부족하지만 겸손하게 낮은 마음으로 당신을 향할 때 열매를 맺어주신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소박하고 낮은 곳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섬기러 오셨다는 예수님 말씀이 이 시간 마음속 깊이 다가온다.

낮은 마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