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
집회서 27장 30절에서 28장 7절은 <분노와 용서>에 대한 말씀을 주신다.
"분노와 진노 역시 혐오스러운 것인데도 죄지은 사람은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그분께서는 그의 죄악을 엄격히 헤아리시리라.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우리가 복수와 적개심이 전제된, 마음속의 화인 분노를 풀고 용서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교리에서는, 분노(Ira; Anger)란 칠죄종의 하나로서, 복수(앙갚음)하고자 하는 무질서한
감정이라 정의한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상처받고, 모욕입고, 손해보고,
억울하게 고통 당했을 때, 의로운 분노(화)가 일어난다.
이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인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에 따라, 그리고 박해하는 사람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라는 말씀에 따라(로마12,9-21) 의지적 신앙의 행위로, 분노의 대상을
용서해 줄 수 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용서의 기도는 도덕적 호소 이상의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의지적으로 주님 말씀에 따라 의지적으로 용서한다. 용서해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내 마음 속의 상처받은 감정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용서(Remissio; Venia; Forgiveness) 콤플렉스에 빠질 필요가
없다. 용서는 내가 상대방한테 찾아가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가 없다. 용서는 피해자의
특권이라는 말이 있듯이, 상대방과 관계없이 내가 혼자 하는 것이라 쉬운 것이다.
그러나 화해(Reconciliatio)는 다르다. 화해란 상대방과 직접 만나, 진실과 사실,
잘잘못을 따지고 나서, 서로 수용하고 인정할 것은 하고, 용서하고 악수하는 것을
말한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한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마태5,21-24참조)
우리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한다고 너무 성급하게 화해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에
겉으로는 형식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진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근본적인 마음의 상처 문제와 화해의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지 않는다. 좀 시간을 가지고,
작금의 문제를 복음적 관점과 자신의 영혼의 성화의 관점인 영성적 차원에서 깊이
성찰해 보아야, 본질적 문제가 해결된다.
Martin H.Padovani(신언회 선교사제,가정문제 전문상담가,정신요법가)는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우리가 화가 났을 경우, 안정될 때까지 우리 자신과 상대방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른 안정 체계(Cooling System)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빨리 안정을 찾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가 상처받고 화가 났을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이
잊어버리거나 치유하거나 안정을 찾을 시간을 줘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감정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상처입은 감정의 치유'
P57-77참조, 백승치 옮김,분도출판사)
지성으로는 우리가 주님의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지성은 초특급 열차요,KTX요, 테제베이다.
그러나 감성은 받은 상처의 흔적(상흔) 때문에 그것이 치유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너무 자신도 상대방도 볶지 말아야 한다.
시간과 세월을 두고 천천히 말씀에 따라 기도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과
상대방을 깊이 들여다 보며,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주님께 봉헌하여 주님의 도움을
구할 수 있을 때 이제 화해의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감성은 완행 열차, 통일호나
비둘기호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화해를 청했을 때,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로마서
13장 8절의 말씀대로 그에게 필요한 은총이 내리도록, 그가 회개하도록, 기도와
희생 바쳐 줄 사랑(애덕)의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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