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신앙
신앙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고
주님을 경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앎을
기초로 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마음으로부터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 사상과 가치관,
운명과 인격을 닮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도
'묵상이란 많이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고 했다.
지성으로 아는 하느님을,
가슴으로 인격적으로 호칭을 부르며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자신의 실존적 문제와 기도의 지향을
가지고 청원하고,
인격적인 사랑의 고백을 해야 하며
매사에 모든 문제를
주님과 상의해야 신앙인인 것이다.
예수님의 12사도로 불리움을 받은
유다 이스카리웃은 단 한번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스승,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는 그 유다가 예수님께 역시
'사랑한다'는 고백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수많은 신학자들과 사제들 중에
학문은 하고 책은 읽어도,
기도를 하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날 첨단 과학의 시대에 인간의
이성(理性)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바벨탑을 쌓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개입과 하느님의
초자연적 은총의 도움을 필요치 않게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
관찰, 실험, 검증에 의해 확인된
사실(factum)만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과학적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의 교만과 불순명은 그 옛날,
하느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금을 타며 찬양의 노래를 부르다가
교만과 불순명으로 지옥에 떨어진
루치펠의 모습을 닮았다.
인간은 감히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시며 심판관이신
주 하느님께 대들면 안된다.
옹기 그릇이
그 그릇을 만드는 옹기장이에게,
작품이 그 작품을 만든 조각가에게,
자식이 그 부모에게
나를 왜 이 따위로 만들었으며,
왜 이 따위로 다스리느냐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과
원리와 원칙이 있으시다.
인간은 좋든 싫든 그것을 알아듣고
그대로 어린이처럼 순종하며
실천하면 된다.
하느님께 대한 지식도
생활한 기도(祈禱)로 봉헌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듯이,
수많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도
선교(宣敎)라는 실질적인 영혼 구원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며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빛, 신앙의 빛,
성령의 빛을 받아 가슴으로,
온 몸으로 살아야 참된 신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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