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의 미학
떠남의 미학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한민택 신부)
떠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수히 지금 있는 곳을 떠나 `밖으로`나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위로부터 태어나기 위해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가? 하고
반문한 니코데모의 착각과도 같은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길을 떠났습니다. 별을 좇아 나선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별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점성술에 능했던 것 같습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모습이라 할까요?
박사들에게 별은 삶의 지표를 의미했을 것입니다.
긴 여정의 목적지 말입니다. 박사들은 우리에게 묻는 듯 합니다.
우리는 뭇엇을 좇아 살고 있는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가?
길을 떠난다는 것은 모험에 나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나를 보호해준 가족과 이웃. 언어와 문화로부터 벗어나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곳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당연히 늘 두려움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나를 보호해 줄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루카9.3)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러한 용기를 지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도 분명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먼 길을 가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길을 가면서 그 많은 짐들.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여겼던
그것들이 결국 자신에게 오히려 힘겨운 짐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가장 필요 없는 부터 말이죠.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남겨 두어야 했을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달하여 유다인들의 임금에게 드릴 예물만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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