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갈등으로 신앙생활이 겉돕니다
아내와의 갈등으로 신앙생활이 겉돕니다
_ "아내 덕에 영세를 받았지만 신앙생활이 겉돕니다.
절에서 삼천 배를 하면 마음 문이 열리는 느낌이고
개신교회에서 잘못한 일을 홀로 회개하고 용서를 청할 때 속이 후련해집니다.
그런데 성당에 가면 고해성사를 보는 일도 어색하고 보속도 실천하지 않게 됩니다.
성체를 영하지 못하고 앉아 있는 처지가 스스로도 한심한데
아내는 남편보다 하느님이 더 귀해서 결코 종교를 바꿀 수 없답니다."
긴 글, 감사합니다.
소상히 알려주신 근황에서 형제님의 아픔을 각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신앙적이며 자상한 형제님의 성격이 더 큰 혼돈을 겪게 하는 듯 싶어 안타깝기도 했네요.
참된 믿음을 갈망하고 모든 일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며
모든 것에 하나가 되려는 형제님의 바램이 느껴졌고
또한 홀로 기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매님에게서 외려 소외감을 느끼는 점에도 공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문득 한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교육의 희생자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남성은 모든 면에서 리더이어야 한다는, 늘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고정관념때문에
아내를 이끌지 못했던 점이 껄끄럽고 못마땅했던 것이라 느껴집니다.
영세를 받은 계기가 “아내 덕”이라 생각하고 모든 걸 ‘시키는 대로
’ 따르고, ‘하라는 대로’ 쫒는 비굴한 사내모습이라서 비위가 상한 건 아닐까요?
그 작은 응어리들 탓에 개신교회에서, 사찰에서 누리는 내적평화를 잃고
오히려 자신을 비하하는 시름에 잠긴 것이 아닐까요?
먼저 하느님과의 사이에 자매님이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털어야겠습니다.
주위에서 아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못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는 지레짐작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형제님께서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자매님의 ‘명령’에 무릎 끊은 패배자가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믿음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한 자기선택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 이전에 하느님의 선택이 먼저이기에 오로지 축복이며 은총입니다.
형제님의 세례는 자매님을 위한 희생과 헌신 덕에 얻은 것이 아니라
자매님을 통해서 부르시고 응답케 하신 그분의 방법이며 섭리일 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똑같이 그분께 사랑받는 ‘유일한 한 사람’임을 명심하여 편견을 부수기 바랍니다.
도움이 되고 싶어 고민했습니다.
한 방법으로 타 본당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고 냉담을 푸는 것은 어떨까요?
자매님과 다른 시간에 미사참례를 하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스스로 전례에 익숙해지고 홀로 그분 앞에 서는 기쁨을 체험할 때까지
면담하신 성당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제가 굳이 이 ‘묘한 방법들’까지 알려 드리는 점은 심히 유감입니다.
믿음의 소중함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를 원하는 사제의 마음을 꼭 헤아려 주십시오.
다만 믿음이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고 누구를 위해 갖는 것도 아니라는 걸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주님과 맞대면하여 신앙에 홀로서기를 할 때 자매님의 단단한 믿음은 형제님께 부담이 아니라
매우 자랑스럽고 엄청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절절히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이 혼돈마저도 더 아름다운 성가정을 이루는 바탕으로 삼으실 주님께 의탁하세요.
힘들고 어려운, 오래오래 묵은 시간의 아픔들을 진솔히 고백하고 신앙을 키워나갈 때
자매님과도 신앙적 대화가 가능할 것이고 자매님께서도 훨씬 기쁜 동반자요 응원꾼이 되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어리석은 생각에 묶여 그분을 향한 길에서 머뭇대는 일은 너무 큰 손해이니, 어서 마음의 짐을 벗어내기 바랍니다.
깊은 고민만큼 더 깊은 신앙을 살게 해 주실 그분께로부터 내려지는 축복을 진하게 전해드립니다.
참, 참, 참, 혼인성사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은총의 성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과 하느님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남편의 물음이야말로 ‘매우’ 그릇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혼인성사로 맺어진 부부는 죽음이 아니면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제 아무리 그분을 더 사랑한다는 표현일지라도
‘남편보다 하느님’이라는 말을 그분께서는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내분께 꼭 전해 주십시오.^^
- 장재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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