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세례받은 사람만 구원받을 수 있나요?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18. 세례성사 ⑥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56~1261항)
꼭 세례받은 사람만 구원받을 수 있나요?
누가 “구원받으려면 꼭 세례를 받아야만 하나요?
세례받지 않고 양심대로 살다 간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나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아마 두 갈래로 대답이 갈릴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성체를 영하는 것이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착하게만 살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가톨릭 신자라면 우선은 “세례와 성체성사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교리서에도 “세례는 복음을 듣고 이 성사를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구원에 필수적이다”라고 하며,
“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지니고 있지 않다”(1257)라고도 말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구원이 성사와 관련이 없어진다면
그 구원의 성사를 세우시기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희생은 헛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기들은 어떻게 될까요? 베들레헴에서 예수님 탄생 때문에 죽어야 했던
죄 없는 아기들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12월 28일에 그 아기들을 기리기 위해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을 지냅니다.
구원받지 못한 아기들을 위해 축일을 지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아기들은 세례도 안 받고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또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당하였고
도망칠 기회도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가르치지 않겠다고만 말하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믿는 진리를 지금 와서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자신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와 같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요?
물론 교회는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례의 중요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세례성사에 매어 놓으셨지만, 하느님 자신이 성사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1257)라는
사실을 견지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이들을 위해 “피의 세례”(혈세, Baptismus sanguinis),
혹은 “열망의 세례”(화세, Votum Baptismi)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비록 교회에서 정식적인 성사를 받지는 않았더라도,
피와 열망을 통해 믿음을 증명한다면 그 또한 세례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사의 목적은 예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사로 생긴 ‘믿음’을 통한 ‘계약’의 성취에 있습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이들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15,12)라는
새로운 계약에 매이게 됩니다. 이 계약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성사의 목적입니다.
따라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처럼 비종교인이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도와주어야만 했던 사마리아인은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성사 생활을 하면서도 선교에 무심했던 사람이라면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선교만큼 큰 사랑의 실천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의 권유로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는 153마리였습니다.
숫자 ‘153’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자녀들’(베니 하엘로임)의 숫자 값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 외에도
당신이 잡으신 물고기도 가지고 있으셨습니다.(요한 21,9 참조) 물고기는 한 영혼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잡으시는 영혼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공식적인 세례를 받지 못했더라도
“진리를 찾고 자신이 아는 대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1260)라고 믿어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5월 9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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