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는 반장 어머니
청소하는 반장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집안 사정으로
세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유난히
수줍음을 잘 타고 낯을 많이 가리던 나는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학교생활에 곧 익숙해지면서
오락시간마다 사회를 도맡아 보고
수업시간엔 엉뚱한 대답으로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놓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반장이 되었다.
내가 반장이 됐다는 말에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하지만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재석이가 반장이 됐으니
선생님도 한번 찾아뵙고
육성회 모임에도 열심히 나가야겠구나."
선생님을 만나는데 빈손으로 올 수도 없고
반장 어머니이니 육성회비 기부도 해야 했다.
어머니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 표정이 왜 갑자기 어두워졌는지.
당시 체신부 공무원이던 아버지 수입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뇌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버지에게
부수입이 있을 리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아버지 월급으로 살림하고 우리 형제들
공부시키기에도 어머니는 벅찬 일이었던 것이다.
그 뒤부터 나는 어머니를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학교 화단과 교문 앞을
말끔하게 청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엄마가 왜 학교 청소를 해?"
하는 내 물음에 어머니는 웃으며
"응, 우리 재석이가 반장이 됐으니까
엄마도 학교를 위해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서…."
나중에서야 나는 어머니가 기부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자 청소하는 것으로
대신하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평생을 두고 갚아도 모자랄 어머니의
커다란 사랑에 제대로 표현 한 번 못한 나,
오늘 비로소 나지막하게 외쳐본다.
"어머니, 사랑해요."
- 개그맨 유재석
계간 『좋은친구』(2004)
청소하는 반장 어머니
나오는 음악 : Self Control - Laura Brani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