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을 입으시오
내 옷을 입으시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송현신부)
서기 32년경 겨울. 로마황제 테베리우스는 군인을 비롯한 모든 신하들이
이교 신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제사를 거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엄포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300년 동안 무적의 사단으로 용맹을 떨친 12사단이 가장 먼저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12사단에 있던 사십 명의 그리스도인 군사들은 일제히 이교 제사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벌거벗긴 채로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로 끌려갔습니다.
그간의 전과를 참작하여 배교의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한 보초병에게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마흔명. 순교자 마흔 명. 그리고 마흔개의 면류관이로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서른아홉 명. 순교자 서른아홉 명. 그리고 서른아홉 개의 면류관이로다!
곧이어 누군가가 호수의 얼음판 위를 걸어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보초병은 무기를 내려놓으며 그에게 외쳤습니다.
여기 내 옷을 입으시오. 내가 당신을 대신하겠소!
다음날 아침 얼어죽은 시체들 가운데는 그 보초병도 끼어 있었습니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스은 말했습니다.
모욕과 박해에 굴복하지 않는 한 그것은 우리의 은인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은 신앙 선조의 박해와 순교라는 은인 덕택에 이토록
고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순교 성인들은 단순히 죽음이라는 차원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천 년의 가톨릭교회 역사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셈입니다.
순교 성인들이 알려주는 진리 하나는.
신앙을 통에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그 옛날처럼 직접적인 피의 순교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 세계 안에서의 순교란 주어진 각자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존재와 가르침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물질만능주의로 대표되는 헛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용감히 살아가는 일입니다.
황금 송아지를 섬기는 이들을 따라 그 앞에 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신앙이 가르치는 바를 다른 무엇보다. 아니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천상 면류관을 쓰고 영원한 생명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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