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할 수 없는 것
1월둘째주 주님 세례 축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마르1.7-11)
마지막까지 할 수 없는 것
(정도영신부. 안동교구 마원진안리 성지 담당)
신학생 시절 영성 신학 교수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여러분들이 신앙적 덕목을 쌓아갈 때 마지막까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입니다. 기도 생활이나 여타 사목자로서 열심히 살아도
이룰 수 없는 것이 겸손임을 명심하세요.
신학생으로서 검소하고 인정많고 사랑을 잘 베풀며 성실하게 살면 살수록
겸손의 모순 속에 있게 되리라. 또 겸손하려고 해도 그것 역시 교만일 수 있으니
참으로 겸손은 어렵다는 말씀이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열심한 신앙인들 속에 가끔 실망할 때가 있다.
이런 모순은 어쩌면 평신도들보다 사제나 수도자에게서 더 보이는 것 같다.
성체조배도. 기도도 잘하고 규칙적인 삶으로 잘 살아가지만
화를 잘 내고 인정도 없는 사제. 수도자들 모습.
누구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까칠하고 자비롭지 못해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있나? 하는 의구심마저 생겨난다.
교수 신부님 말씀처럼 그분들은 열심히 살려고 하다 보니
겸손이 말라버린 것은 아닐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분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병자들에게는 병이 낫는 기쁨을.
죄인들에게는 죄를 용서받는 기쁨을. 마귀들린 사람에게는
마귀를 물리치는 기쁨을. 배고픈이들에게는 배부르게 되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아끼고 그들의 발도 씻기고 당신이 몸소 보여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몸도 내어주는 그런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그 사랑에는 참으로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다보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세례는 그래서 사랑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을 시작하며 우리는 진정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 속에서 배운 사랑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가 반성해보아야 한다.
자신을 낮추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 본인이 열심히 잘 살고자 한다면
예수니처럼 죄가 없으심에도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그런 마음의 자세부터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역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딸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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