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십자가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성당 정면에 있는 커다란 십자가의 예수님을 봅니다.
해처럼 빛나는 얼굴도, 빛처럼 하얀 옷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가시관에 찢기고 피범벅이 되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처참한 얼굴과 벌거벗은
몸. 매 주일 우리는 성당에 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리신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 스스로는 해처럼 빛나고 빛처럼 하얘질 수 있으십니다.
그런 분을 우리가 어떻게 한 것입니까?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이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짓이라고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이천 년 전 예수님입니까?
2014년 사순 제2주일을 지내고 있는 우리에게 처참한 십자가의 예수님은
의미가 없는 죽은 예수님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시고자 애를 쓰셨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이용하셨습니다. 수많은 기적과 위로의 말씀들,
가르침들, 이야기들을 보여주셨고, 들려주셨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모습까지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천 년 전에….
오늘, 우리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죄 없는 이를 단죄하고, 모욕하고, 업신여기고 있다면,
이천 년 전 유다인들이 예수님과 빌라도 앞에서 외쳤던,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를 똑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고, 거짓을 만들고, 퍼뜨리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또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알려지지도 않은 채 스스로 삶을 버리는 이 현실을 우리가 외면하고 있다면,
가난하게 오셔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던 예수님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해처럼, 빛처럼 빛나시는 분이십니다.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분을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 옆에 거룩하게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지요. 우리만 아니었으면, 우리가 잘 했으면,
예수님의 현재 모습은 빛나는 거룩한 모습이겠지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우리를 아끼시는 것입니까?
당신께서 보여주신 이 사랑의 깊이에 눈물이 납니다.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 조금 알아듣게 됩니다. 거룩함과
처참함. 그 사이의 간격만큼 우리의 죄는 크고 당신의 사랑은 또한 깊습니다.
십자가가 수난, 고통,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느낍니다.
십자가는 모든 실패에 대한 승리이고, 아픔에 대한 치유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나 봅니다.
화려하고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감동과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신, 가시관이 머리에 박혀 피가 흐르고, 채찍질로 찢겨나간
피범벅이 된 벌거벗은 몸의 예수님께 우리는 기도를 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 드리게 됩니다.
아무것도 들어줄 수 없어 보이는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지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혼자라고 느낄 때,
너무 외롭고 울고 싶을 때,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 갑니다.
내가 꼴찌라고 느낄 때 뒤에서,
‘내가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십자가의 예수님께 무한한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 거룩하게 빛나는 십자가의 그분께 기도드립니다, 사랑을 배웁니다.
예수회 수도회
김동일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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