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히는 법을 잊었네
굽히는 법을 잊었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송현신부)
중세 때 사막에서 하느님과 함께 산다는 유명한 수도승이 있었습니다.
그의 소문은 인근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어떤 젊은이가 그를 찾아 무작정 사막으로 향했습니다.
수도승에게서 영적인 가르침을 얻어 자신도 하느님과 함께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젊은이는 숱한 어려움 끝에 드디어 수도승이 머물고 있는 작은 움막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허락을 얻어 그곳에서 며칠간 머물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젊은이가 수도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이시여! 성경에 보면 옛날 사람들은 하느님을 만났고
또 그분과 함께 거닐었다고 하는데. 왜 요즘 사람들은 하느님을 만날수 없는 것입니까?
수도승은 젊은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렇데 대답했습니다.
젊은이! 요즘 사람들은 말이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만큼 허리 굽히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
하느님과 함께 거닐 수 있는 길.
그것은 허리를 굽혀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분이 보여주신 대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이천 년 인간이 하느님을 직접 만난것은 인간이 그분께로 올라가서 이뤄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낮추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께서 시간과 공간 안에 당신을 가두셨던 것입니다.
그토록 낮아지셨던 주님의 모습은 남보다 높아지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남이 나보다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를 타이릅니다.
여러분은 인도의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의 허리를 기억하십니까.
미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낮추느라 등나무처럼 휘어진 그 허리를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낮추었기에 하느님을 만났고
이제는 하느님과 함께 천국을 거닐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하느님을 만날 수 없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허리를 굽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굽혀야만 다다를 수 있는 곳에 계십니다.
가정과 성당과 사회 안에서 내가 먼저 굽히고 내가 앞장서서 낮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한없이 낮추는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간 역시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주님의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다.
(마태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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