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이슬과 같습니다

수성구 2020. 12. 18. 05:03

이슬과 같습니다

이슬과 같습니다!

(엠마오로 가는길에서 송현신부)

 

 

신라때 조신스님이 장원으로 파견되었는데 그곳 태수의 딸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정해진 배필이 있었습니다.

조신은 관음보살에게 그녀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도 그리던 여인이 법당에 들어와 고백합니다.

스님! 저는 일찍부터 스님을 마음으로 사랑했습니다.

조신은 너무나도 기뻐하며 여인과 함께 다섯 자녀를 두고 사십 년을 숨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열다섯 살인 큰아이는 굶어 죽고 두 내외는 늙고 병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열 살 된 딸아이의 구걸로 연명해 나갔던 것입니다.

하루는 부인이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초와 같은 사랑의 약속도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와 같습니다.

이제 그대는 내가 있어 더 누가 되고. 나 역시 그대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이후 두 사람이 울면서 헤어지는 순간 조신은 꿈에서 깨어납니다.

사십 년의 부부 생활이 법당 안에서 깜빡 존 한순간의 꿈이었습니다.

 

 

 

이상은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꿈이라는 설화입니다.

이 이야기 뒤에 일연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속세의 즐거움만 찾아 얻으려 애쓰지만

그것은 다만 하룻밤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속적 쾌락과 물질을 아무리 쫓아다녀 보아도 언젠가는

풀 위의 이슬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눈앞의 이득이나 즐거움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그는 자기 영혼을 헐값에 팔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걱정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다면 그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꽁꽁 묶여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이 세상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심을 미리 설정해두고 하느님께 보장하라는 요구 사항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귀 영활을 위해 하느님까지 동원하려 한다면

그분이 주실 미래는 우리 안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허망한 세상의 환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이 주실

찬연한 미래를 향해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한바탕 꿈과 같은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히 남을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최후의 승리는 바로 그런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입니다.

(1코린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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